불황이 닥쳐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줄이면 기업들은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저가 마케팅을 펼친다. 경기침체기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가 상품을 앞세운 부자마케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불황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4월 인터넷 옥션 중고장터 방문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가량 늘었다. 거래액도 지난해보다 3, 4배 증가했다. 불황 여파로 한쪽에서 중고품이 날개 돋친듯 팔려 나가고 있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소수 부자들을 위한 차별화된 마케팅이 펼쳐지고 있다. 그 어느때보다 소비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점점 심해지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소득 하위 20% 계층의 가계 평균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나 감소했다. 반면 상위 20% 계층의 가계소득은 1.1% 늘었다. 이에 따라 상위 20% 계층의 소득을 하위 20% 계층의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이 8.68배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하위 20% 계층은 한달에 85만6천원을 벌고 136만1천원을 지출해 50만5천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적자액은 전년 동기(2008년 1분기 44만6천원)에 비해 13.2%, 전분기(2008년 4분기 34만원)에 비해서는 48.5%가 늘었다. 소득 자체가 80만원대로 떨어진 것도 2007년 3분기(90만원) 이후 7개 분기 만에 처음이다. 하지만 상위 20% 계층은 한달에 742만5천원을 벌어 486만1천원을 지출해 256만4천원을 남겼다. 처음으로 흑자액이 250만원대를 넘어섰다.
이는 경기후퇴로 실업이 증가하고 임금이 떨어지는 가운데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저소득 계층이 경제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VVIP를 잡아라
일명 '2080법칙'으로 알려진 파레토법칙이 마케팅(20% 우량 고객이 80% 매출을 책임진다)에 적용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부유층만을 겨냥한 마케팅이 사회양극화를 부추기고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줘 사회통합에 걸림돌이 된다는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최근 소득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우량 고객을 잡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우량 고객 중에서도 성골로 분류되는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을 잡기 위한 노력이 두드러지고 있다.
몇년 전 한 자동차 회사가 1% 마케팅을 벌여 화제가 됐다. 소수만을 위해 준비한 특별한 차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재미를 봤다. 지금은 0.05% 마케팅이 펼쳐지고 있다. 시발지는 카드업계다. 현대카드는 2005년 상위 0.05%를 대상으로 한 VVIP카드 '더 블랙'을 내놨다. 더 블랙은 초우량고객 금융상품의 효시로 꼽힌다. 출시 당시 카드업계뿐 아니라 현대카드 내부에서도 성공 여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100만원의 연회비를 내고 신용카드를 이용할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더 블랙은 현대카드 최고의 효자상품이 됐다.
더 블랙이 성공함에 따라 BC'롯데 등 다른 카드사들도 잇따라 VVIP카드를 출시했다. 신한카드도 이달 초 연회비 100만원의 '신한프리미어카드'를 출시했다. 신한프리미어카드는 항공'특급 호텔'국내 명문 골프장'명품관 등과 관련된 각종 특별 서비스로 무장돼 있다.
삼성카드도 조만간 VVIP카드를 내놓을 예정이어서 VVIP카드시장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극소수 선택받은 사람만이 가입할 수 있는 VVIP카드 발급에 업계가 열을 올리는 이유는 연체가 발생하지 않아 손실 위험이 없고 오피니언 리더들을 고객으로 확보할 경우 이미지 개선에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는 가운데 3.3㎡당 분양가가 4천만원대인 초고가 아파트도 등장했다. 2011년 6월 입주 예정인 서울 뚝섬 주상복합 한화 '갤러리아 포레'는 230가구(233~377㎡)로 구성돼 있으며 평균 분양가는 3.3㎡당 4천374만원이다. 설계 당시부터 VVIP고객을 겨냥했다. 한강을 볼 수 있는 뛰어난 조망권에다 서울숲과 바로 연결되고 천연대리석 등 고급 자재를 사용했다. 특히 계약자 취향대로 주택형을 맞춤 설계해 준다. 한화건설이 제공하는 기본형을 선택할 수도 있고 계약자 본인이 직접 인테리어를 할 수도 있다. 건축분야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받은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디자인한 유닛(unit)을 선택할 경우 분양가의 10%가량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갤러리아 포레는 230가구 중 절반 이상 계약이 마무리됐다고 한다. 계약자들은 전문직 종사자 또는 기업 오너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1일부터 국내 휴대전화 가운데 가장 비싼 모델인 '프라다2'를 예약판매하고 있다. 판매가격은 무려 180만원. 42인치 PDP TV, 9kg 드럼세탁기, 700ℓ 양문형 냉장고를 모두 살 수 있는 가격이어서 출시 전부터 논란이 됐다. '프라다2'에는 8GB 내장메모리, 500만화소 카메라, 지상파 DMB 등이 탑재되어 있으며 손목시계형 블루투스 장치인 프라다링크와 함께 판매되는 것이 특징이다. 프라다링크는 시계뿐 아니라 메시지 확인'통화내역 저장'통화 거절 등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LG전자는 VVIP 마케팅을 통해 명품 이미지를 극대화할 방침이다.
현대자동차는 올 하반기 4.6모델을 업그레이드 시킨 배기량 5000cc 에쿠스리무진을 출시한다. 신형 에쿠스리무진은 일반 세단보다 길이가 300~400㎜ 길고 최대 출력도 4.6모델보다 14마력 가량 높은 380마력 이상이다. 판매 가격은 1억3천만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는 우선 내수용으로만 신형 에쿠스리무진을 판매할 계획이다. 또 현대자동차는 국내 휘발유 엔진 가운데 최대인 5500cc 엔진도 개발 중이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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