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자궁경부암 투병 이현희씨

입력 2009-06-10 09:07:05

"상처만 줬던 아이들에게 제대로 엄마노릇도 못하고…"

▲ 자궁경부암으로 투병 중인 이현희(가명·35)씨는 무척 수척했지만 삶에 대한 의지만큼은 강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자궁경부암으로 투병 중인 이현희(가명·35)씨는 무척 수척했지만 삶에 대한 의지만큼은 강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뒤늦게라도 아이들 데려와 엄마가 지은 죗값을 갚으려 했는데…."

자궁경부암으로 투병 중인 이현희(가명·35)씨는 고2와 중2의 두 아들이 있다. 하지만 아들이 있어도 함께 사는 '가족'은 아니다. 두 아들은 그에게 암덩이보다 더 아픈 상처다. 벌써 10년 가까이 보육원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꾸만 엇나가는 아이들이 걱정돼 이씨는 몇 달 전 이혼한 남편에게 "아이들을 데려오겠다"고 요구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두달여 후 투병생활이 시작되면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꿈은 한발 더 멀어진 상태다.

이씨의 학력은 중졸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했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섬유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18세 어린 나이에 첫 아이를 가졌다. 남편은 이씨보다 여섯살이 많은 중국집 배달원이었다. 결혼식도 제대로 못 올린 채 시작된 결혼생활. 둘째가 태어나고 작은 중국집을 시작하면서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꿈꿨다.

'단란한 가정'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남편이 도박에 손을 대고, 술에 절어 사는 날이 늘어나면서 가게는 아예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은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르는 날도 늘어났다. 당시 3세, 6세이던 두 아들이 눈에 밟혔지만 심한 폭력에 시달리고 나면 '당장 내 목숨부터 살고 봐야겠다' 싶었다. 집을 나오기까지도 힘들었다. 남편은 바닷가로 이씨를 끌고가 '집을 나갈 거면 같이 죽자'며 이씨를 협박했다.

도망치듯 집을 나와 친정집에 얹혀사는 동안 아이들 생각이 가슴을 짓눌렀지만 할머니가 잘 거둬주려니 하고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몇 년 만에 듣게 된 아이들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전라도의 한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놀란 마음에 전라도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보육원을 수소문했지만 아이들을 찾긴 힘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난데없이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방학 동안 며칠 얼굴이라도 보여주려 했다"고 했다. 그 후 간간이 일년에 한두번 정도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는 있었지만 보육원에서 데리고 나올 방법이 없었다. 남편이 양육권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둘은 "한명이 잘못해도 단체 얼차려를 받기 일쑤"라며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엄마와 살고 싶다"고 애원했다. 이씨 역시 결혼한 언니와 찢어지게 가난한 부모님댁을 번갈아가며 얹혀사는 처지라 엄두를 내기 힘들었지만 지난해부터 아이들이 보육원을 뛰쳐나오는 일이 발생하면서 마음을 굳혔다. 일자리도 구했다. 전자제품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달에 80여만원가량의 수입도 생기게 됐다.

하지만 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나 보다. 갑작스런 복부 통증에 병원을 찾았더니 조직검사 결과 자궁경부암 2기 말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병원비를 손 벌릴 어느 누구 하나 없는 형편에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 수술비까지 1천만원 가까이 든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따라다닌 '가난'이라는 꼬리표가 정말 징그럽게도 싫었다.

아직 35세의 나이. 아직 아이들은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씨는 "평생 해 준 것도 없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짐까지 줄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씨는 "무슨 수가 있더라도 꼭 나아야 한다"고 입을 앙다물었다.

"상처만 줬던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엄마 노릇 한 번 해보기까지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잖아요. 치료가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내야죠. 전 남편이 보육원에 아이들을 버려놓은 채 양육권을 내놓지 않는다면 소송이라도 해서 아이들을 거둘 겁니다." 병으로 살이 빠져 수척해진 모습의 이씨였지만 생에 대한 의지만큼은 과거 어느때보다 단단해보였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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