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대구 남구 앞산 인근의 한 공원. 희망근로사업 참여자들이 잡초 제거와 물뿌리기에 한창이었다. 2명씩 오전·오후로 나눠 8시간씩 공원관리를 하고 있지만 일은 크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를 줍고 청소를 하던 이들은 이내 공원 한편에 주저앉았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탓이다. 잠시 쉰 이들은 화단 곳곳을 뒤져 담배꽁초를 찾는 등 일을 억지로 만들어냈다.
같은 시각, 대구 달서구 한 소공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3명의 희망근로사업 참가자들은 2시간여 동안 공원 내 쓰레기를 3포대 정도 모은 뒤 나무 그늘에서 잡담을 나눴다. 한참 뒤 자리를 털고 난 이들은 빗자루로 공원길을 쓸기 시작했다. 불과 1시간 전에 치웠던 길을 또다시 청소하고 있었다. 이들은 앞으로 6개월 동안 이 공원에서 똑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한 참가자는 "한두 번 치우고 나면 크게 할 일이 없다"며 "그래도 한 달에 80만원 이상 받는데 놀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할 일이 없어요=1일부터 저소득층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시작된 희망근로 사업이 큰 예산을 들여 단순 잡역부만 모집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사업 중 상당수가 근로 참가자의 전직이나 사회 경력과 상관없이 배치되는데다 절반 이상이 환경정비, 청소 등 단순·반복 업무다.
대구시내 각 구·군에 따르면 희망근로 사업 중 가장 많은 인원이 투입되는 사업은 주민생활 환경정비사업이나 환경정화, 가로숲·꽃길 조성 등이다. 달서구의 경우 산림정화나 불법광고물 정비, 숲가꾸기, 공원 정화, 가로숲 조성 등 환경정비 사업에 전체 참가자 2천852명 중 절반 가까운 1천210명을 투입했다. 이 가운데 6개월 내내 공원 청소에만 매달리거나 정해진 구간에서 불법 광고물을 제거하는 식의 단순 노동을 반복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업 시행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중도 포기자가 속출하고 있다. 대구시내 8개 구·군에 따르면 지난 4일 현재 중도 포기자(공문·구두 통보)는 중구 32명, 동구 216명, 서구 80명, 남구 97명, 북구 124명, 수성구 230명, 달서구 213명, 달성군 120명 등 1천100명 가량으로 선발자의 8%에 이르고 있다.
구·군이 머릿수 채우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일거리를 '억지 춘향'식으로 만들어낸 탓이 크다는 게 참가자들의 지적이다. 참가자들의 경력 및 전직과 상관없이 일단 뽑아서 밀어넣어 보자는 식이어서 실망감을 느낀 참가자들의 포기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 섬유공장에 다니다가 실직했다는 김모(51·여)씨는 "섬유직종과 관련된 일이었다면 돈이 적더라도 경력을 살린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할텐데, 희망근로 기간이 끝나도 남는 게 없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중노년층이 많기 때문?=각 구·군은 신청자 대다수가 고령인데다 일용직 근로자나 주부인 탓에 전문 업무에 투입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전체 신청자 2만826명 중 50세 이상 중·노년층이 무려 69.6%나 되고, 일용직노동자(19.3%)와 주부(19.1%)가 많다. 또한 전체 사업비 가운데 인건비와 4대 보험으로 지급되는 비율이 89%에 달해 기존사업에 투입하는 대신 새로운 사업이나 규모 있는 사업을 발굴하기 어렵다.
대구시내 한 구청 관계자는 "중앙정부나 대구시는 특화된 사업을 만들어내라고 독려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남는 인원은 독거노인·장애인 돌보미나 기업지원 활동 등 행정력이 미치지 않았던 주민 친화적인 사업에 배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돈을 주기 위해 벌이는 6개월짜리 한시적 사업인 만큼 참가자의 적성을 고려하거나 전문성있는 분야에 투입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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