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비주얼+상상력 '3D 향연'…영화 '코렐라인:비밀의 문'

입력 2009-06-06 06:00:00

영화 '코렐라인:비밀의 문'은 11살 난 딸과 함께 보기에는 꽤 불편했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관람하는 내내 '자격지심'이 들었다. 주인공 코렐라인의 부모는 맞벌이 부부다. "아빠, 엄마가 왜 이렇게 힘들게 일 하는 줄 아니? 다 너희들 뒷바라지 하느라 그런거야. 자꾸 철없이 보채지 말고 제발 네 할 일은 네가 좀 알아서 하렴." 부부가 딸에게 던지는 이런 말들은 흠칫 놀랄 정도로 현실의 우리 모습과 닮아 있다. 아마 옆에서 함께 보던 딸은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흠, 나랑 같은 처지구먼. 어떡하나 두고 볼까나.'

어느 날 괴이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도는 저택에 이사 온 코렐라인은 방 한 구석에서 '비밀의 문'을 발견한다. 그곳을 통과해서 만난 세상은 현실의 모습과 똑같이 닮아 있다. 하지만 느낌은 전혀 다르다. 밝고 유쾌하며 명랑하다. 아빠와 엄마는 일 때문에 바쁘지 않다. 현실에선 형편없는 요리 솜씨의 아빠가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 담당 엄마는 내내 일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식사 때마다 맛난 음식을 내놓고, 아빠는 훌륭한 솜씨로 피아노를 연주한다. 늘 코렐라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애쓴다. 현실의 부모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 코렐라인은 행복감에 젖는다. 다만 '다른 세계' 부모의 눈이 단추라는 점만 빼면. '다른 세계' 부모는 코렐라인에게 눈을 단추로 바꾸고 이곳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과연 코렐라인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만약 우리 딸들에게 이런 제안이 온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이런 불편감을 감수하고라도 이번 영화는 자녀와 함께 보기에 아깝지 않다.

일단 볼거리가 풍부하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다보니 장면 하나하나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힘들고 고된 작업을 거치지 않은 영화가 없겠지만 '코렐라인:비밀의 문'은 단순히 그래픽 화면이 아니라 실제 인형의 미세한 동작을 일일이 연출해서 찍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놀랄 정도다. 아울러 캐릭터들이 재미있다. 음산한 저택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비밀의 문과 마녀의 관계까지 훤히 꿰고 있는 이상한 검은 고양이와 코렐라인을 줄곧 쫓아다니다가 문제 해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와이비, 코렐라인의 집 2층에 살며 생쥐 서커스를 할 수 있다고 믿는 괴짜 미스터 보빈스키, 코렐라인의 집 지하에 살고 있는 두 할머니 미스 스핑크와 미스 포서블까지. 늘 서로 티격태격 하는 미스 스핑크와 미스 포서블은 현실 세계에서 코렐라인에게 찻잎 찌꺼기와 오래된 사탕으로 점을 봐주면서 앞으로 위험에 처할 상황을 알려주며, 위험에서 도움이 될 사탕 반지까지 만들어주기도 해 영화 속 흥미를 더해주는 캐릭터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세계 최초 3D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그야말로 정성이 갸륵해서라도 한번 봐 줄 만한 작품이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은 사람이 직접 인형과 옷, 배경까지 1mm씩 움직이며 촬영하는 기법을 일컫는다. 기존에 '월레스와 그로밋', '치킨런' 등의 작품에서 선 보였던 기법. 하지만 이번 작품은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캐릭터들의 울고, 웃고, 말하는 표정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인형 얼굴의 위, 아래 부분을 따로 일일이 제작했다. 제작진은 20만 가지가 넘는 표정을 선보인다고 말한다. 사람 표정이 그렇게 많은 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심지어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표현하기 위해 물 길이를 모두 달리 만든 엄청나게 많은 조각을 이용했다.

▶등장 인물의 의상은 모두 실제=세상에서 가장 작은 의상이 등장하는 영화다. 옷 한 벌, 한 벌을 작은 바늘과 실로 제작했다. 특히 다른 세계의 엄마가 코렐라인에게 선물하는 별 모양 스웨터는 머리카락처럼 미세한 실과 바늘로 직접 털실로 짠 것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장 작은 스웨터라고. 사람의 손가락 두 개 정도가 들어가는 크기의 스웨터 하나를 만드는데 평균 6주에서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미스터 보빈스키의 화려한 의상 등도 직접 손으로 만든 것으로 실제 사람들이 입는 스웨터와 모양은 물론 질감까지 똑같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첨단 모핑(morphing) 기법과 대규모 세트=실제 배우처럼 울고, 웃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이 영화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화면을 차례로 변형시키는 특수 촬영 기술인 모핑(morphing)기법을 사용했다. 때문에 2년간의 프리 프로덕션, 약 18개월 동안의 촬영기간을 거쳐 7년이라는 오랜 제작 기간 끝에 탄생했다. 아울러 섬세한 부분까지 살리기 위해 전체 길이 55km가 넘는 촬영 장소에 무대 52개를 만든 뒤 그 위에 130개가 넘는 세트장을 짓는 대규모 촬영 구역을 만들기도 했다.

▶'생쥐들의 서커스' 제작 비밀=미스터 보빈스키의 생쥐 61마리가 보여주는 74초의 서커스 장면은 이번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생쥐들이 동시에 움직이며 꼬리로 'CORALINE'이라는 글자를 만드는가 하면, 공 위에 서 멋진 쇼를 펼치거나 북을 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생쥐 서커스를 연출했다. 스톱 모션에서 61마리 생쥐를 동시에 움직이려면 제작진이 직접 동물 하나하나를 만져야 한다. 촬영 전 수차례의 테스트는 물론 카메라 리허설까지 필요했다. 결국 300명의 제작진이 66일 동안 촬영한 이 장면은 할리우드에서도 유명 일화로 남게 됐다.

▶원래는 실사영화로 만들 예정이었다=영화는 닐 게이먼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소설은 2002년 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즈 선정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화제를 낳았다. 소설 속에서 두 세계를 오고 가는 상황 설정,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엄마와 아빠, 단추 눈이라는 독특한 소재 그리고 개성 만점의 독특한 캐릭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화를 만들기로 한 헨리 셀릭 감독은 실제 배우들이 등장하는 실사 영화로 촬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오가는 주인공 코렐라인의 모험을 더욱 세밀하고 잘 표현하기에는 애니메이션이 적합하다고 판단해 계획을 변경했다. '크리스마스 악몽'을 스톱 모션으로 제작한 경험이 있는 헨리 셀릭의 판단은 적중한 셈이다. 김수용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