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병요? 이제 한국인 다 돼가는걸요!…유학생 '한국살이'

입력 2009-06-06 06:00:00

▲ 아르메니아 하이쿠히 차코글린씨.
▲ 아르메니아 하이쿠히 차코글린씨.
▲ 방글라데시 모함메드 유수프 쵸드리씨.
▲ 방글라데시 모함메드 유수프 쵸드리씨.
▲ 베트남에서 온 가족 유학생, 좌로부터 트롱윈 탐윈, 트롱윈 유빈, 트롱윈 루안부, 팜호 메이안
▲ 베트남에서 온 가족 유학생, 좌로부터 트롱윈 탐윈, 트롱윈 유빈, 트롱윈 루안부, 팜호 메이안
▲ 파나마 다닐로 까세레스씨.
▲ 파나마 다닐로 까세레스씨.

대구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구의 외국인은 모두 1만9천880명. 2003년 1만5천267명이었던 것에 비해 30% 증가했다. 2005년 이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증가는 결혼이주여성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유학생 숫자도 그만큼 늘었기 때문. 경북대의 경우 2003년 165명에서 현재는 1천265명에 이른다. 계명대도 마찬가지로 2003년 118명에서 지금은 1천178명으로 10배 늘었다. 전체 학생의 10% 가까이 되는 숫자다.

경북대, 영남대, 계명대 등 3개 대학 자료에 따르면 중국 학생들의 숫자가 각 1천명선으로 압도적. 하지만 그 나라를 대표하듯 1명만 있는 곳도 있다. 가나, 가봉, 루마니아, 세네갈, 엘살바도르, 콩고, 탄자니아, 파나마, 파라과이, 아르메니아 등 16개국에서 온 학생들은 3개 대학 합쳐 각 1명씩으로, 유학생 자격으로 이 땅에 체류하고 있다. 이들은 그 나라의 움직이는 대사관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학교마다 1명씩만 있는 사람들은 외로움에, 향수병에 온몸을 뒤틀릴만도 할 터. 무엇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제 3세계 국가에서 온 이들은 언어와 문화 차이로 고생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이들은 이미 따뜻한 한국인의 마음씨에 반해 있었고, 자국을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려 했다.

이들 모두를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중 아르메니아, 방글라데시, 파나마 그리고 베트남 학생들을 소개한다. 이들의 한국살이는 어떨까.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다른 나라도 있을 텐데 왜 하필 한국이었을까.

◆아르메니아, "한국과 닮은 곳이랍니다."

한국에는 아르메니아 대사관이 없다. 대사관이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 일본. 한국에 온 지 4년째인 하이쿠히 차코글랸(Haykuhi Charchoghlyan·38·여·경북대 식품공학 박사과정)씨는 조국 아르메니아를 한국과 많이 비슷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소개한 아르메니아의 상징은 아라라트(Ararat) 산. 노아의 방주가 물이 다 빠진 뒤 머무른 산이면서 터키와 이란과 아르메니아의 경계에 있는 산이기도 해 우리나라의 백두산과 비슷하다고 했다. 한국과 더 비슷한 점은 사계절이 있는 곳이며 윗사람을 존경하고 사람들의 정이 넘치는 곳이라는 것. 심지어 사우나까지 있단다. 외국인에게 친절한 것도 쏙 닮은 부분이란다.

구소련의 일부였던 아르메니아는 종교적 이유로 구소련에 스스로 합병을 제의했다고 했다. 이란, 이라크, 터키 등 이슬람 국가의 등쌀에서 이겨내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는 것. 실제 아르메니아는 1915년 터키로부터 150만명가량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자신들만 쓰는 아르메니아어가 따로 있고, 종교가 달랐지만 1921년 구소련연방에 들어간 이유도 그런 배경이었다. 러시아정교회가 국교인 러시아와 달리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정교회 교도가 전국민의 99.9%라는 말도 뒤따랐다. 한국의 기독교와 비슷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이쿠히씨 역시 대구 동부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하이쿠히씨가 한국을 선택한 건 단순했다. 생명공학 기술에서는 경북대 박희동 교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해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오게 됐다는 것. 한국에 대해서 그 전까지 아는 것도 없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든 느낌은 터키말과 비슷해 놀랐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즐겨먹는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하지만 한국살이 4년간 많은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특히 문화적인 부분에서 고국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친근감이 더 커졌다고 했다. 함께 점심식사를 해보니 이런 말들이 사실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계란말이와 생선튀김, 김치를 먹으면서도 인상 한 번 구기지 않았다. 특히 아르메니아에는 바다가 없지만 한국에서의 지난 4년간 생선 먹는 실력도 많이 늘었다.

외롭지 않냐고 하자 바빠서 외로울 틈이 없다고 했다. 또 같은 학교에 물리학을 전공하는 연구원 커플이 있어 그들과도 만남을 갖는다고 했다. 하이쿠히씨는 "한국에 대사관이 없는 아르메니아라서 나는 대사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으로 한국과 닮은 '아르메니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방글라데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들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모함메드 유수프 쵸드리(Mohammed Yousuf Chowdhury·32·계명대 어학당)씨는 한국인들에 눈에 비친 방글라데시는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고 말했다. 그가 한국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강사로 일하던 3년 전. 한국에서 온 경제인들로부터 한국의 정치상황과 문화에 대해 익히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대해 미리 알고 온 쵸드리씨도 생활이 곧 종교인 고국의 상황과 다른 한국의 식생활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한국에 온 지 9개월째인 그는 "무슬림들에게 금기시되는 돼지고기를 한국 사람들이 즐겨먹어서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큰 문화적 충격은 다른 데 있었다. 공동 목욕탕에서 함께 알몸으로 샤워를 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 그는 "방글라데시에서는 개인적으로 샤워하는 건 물론이고 집단적으로 샤워하는 경우에는 하의는 꼭 입는다"며 "문화 차이 때문에 한국에 온 지 사흘째에야 겨우 하의를 입고 샤워장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결혼을 했고 딸도 하나 있다는 쵸드리씨는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 기숙사에서 생활하기에 월 90만원의 생활비 중 30만원은 고국의 식구들에게 보낸다고 했다. 환율이 올라 200달러 정도밖에 안 된다는 푸념도 곁들였다. 그렇다고 쵸드리씨의 집이 가난하거나 살기 빠듯한 건 아니었다. 장인이 대학 학장이며 자신의 아버지도 고위 공무원. 일종의 책임감도 엿보였다.

쵸드리씨는 "경제상황은 좋지 않아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들의 나라라는 인식이 한국에 퍼져 있어 자긍심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3~4년 정도 한국에 머물며 유학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나마, "프리즌 브레이크랑 운하밖에 모르시죠?"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에 배경으로 등장한, 그리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운하로 잘 알려진 파나마. 다닐로 꺄세레스(Danilo Caceres·35·계명대 어학당)씨는 '현대의 배, LG의 TV, 삼성 카메라'만 알고 한국에 왔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의 전공은 전기전자. 대학 강사로 일했던 꺄세레스씨는 아시아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한국을 택했다고 했다.

스페인어를 쓰는 파나마지만 한국의 학생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넨다. 인구 300만명의 파나마이기에 고국을 잘 모르는 한국인들이 많아도 그리 섭섭한 것은 없단다.

어찌보면 완전 생초보 생활인 한국은 그에게 신기한 것 투성이. 특히 학교에서 보는 선후배간 독특한 인사법은 그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고 했다. "2달 전쯤 식당에서 학생 한 명이 선배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는데 선배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는 걸 보고 신기했다"며 "심지어 샤워장에서도 그렇게 인사를 해 놀랐다"고 했다. 더 희한한 것은 화장실에서도 그렇게 한다는 것. 다행히도 그는 그런 광경을 보고 '한국인들이 상당히 예의가 바르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파나마에서 온 유일한 학생답게 그는 좀더 한국인들과 가까워지는 방법이 있다면 꼭 참여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홈스테이가 가능하면 직접 한국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도 여전히 한국 음식에 대해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지난해 9월 한국에 발을 디뎠지만 너무 매운 음식에는 손사래를 친다. 그 역시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이기에 월 9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받지만 돈 대부분을 음식을 사먹는 데 쓴다.

그래도 꺄세레스씨는 한국인들과 함께 하는 데 적극적이다. 그는 "내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며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는데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베트남 가족, "우리는 다 한국이 좋아 물 건너왔어요"

트롱윈 루안부(Truong Nguyen Luan Vu·33·영남대 응용화학공학 박사수료), 팜호 메이안(Pham Ho Mai Anh·30·여·영남대 패션섬유 박사과정), 트롱윈 탐윈(Truong Nguyen Tam Nguyen·29·영남대 응용화학공학 박사과정), 트롱윈 유빈(Truong Nguyen Nhu Quynh·26·여·영남대 응용화학공학 석사과정)씨. 호치민에서 온 베트남 3형제와 맏형의 부인까지 4명의 가족은 한국이 좋아 모두 물을 건너왔다고 했다.

이들이 한꺼번에 한 학교에서 공부하게 된 건 순전히 맏이인 루안부씨 때문. 2003년 한국에 먼저 왔던 루안부씨는 이듬해 같은 학교에서 강의를 했던 메이안씨를 불렀다. 한국이 살기도 좋고 공부하기도 좋다고 열심히 꼬드겼던 것. 이후 둘은 결혼했다. 그리고 한 해 더 있다가 동생들이 하나씩 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유빈씨가 올해 초 입국하면서 온가족이 한국에서 공부하게 됐다.

호치민시 기술교육대학 강사였던 이 부부는 대학교수가 되려고 한국에 왔다고 했다. 무엇보다 독일에서 1년간 유학경험이 있는 루안부씨는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가 비슷해 오래 머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날씨가 다르고 눈을 볼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신기하다는 이들은 다만 과일의 종류가 적다는 게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베트남에는 두리안, 망고는 지천에 널려있는데, 한국에서는 먹기 어렵다는 것. 음식에 들어가는 채소, 특히 풀이 그립다고 했다. 강한 향이 나는 풀이 한국에는 깻잎이 유일하다고 했다. 베트남에 도착하면 맡을 수 있는 강한 향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고국과 비슷한 한국 문화 때문에 그다지 향수병에 걸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특히 루안부씨 부부는 2년째 고국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스쿠터 한 대는 족히 살 정도로 비행기삯이 굳었다며 웃었다.

한국에 온 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년씩 있었지만 한국어에 서투른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한국어는 읽기엔 쉽지만 뜻이 어려워 배우기 힘들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유학생활 동안 굳이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도 학업을 소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단다. 그만큼 한국의 대학들이 국제화에 열성이라는 반증.

지금은 많이 볼 수 없지만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세요'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처음에는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치른 전쟁에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실제 베트남 국민들은 미국에 이겼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다.

그래도 한국에서의 생활에 상당히 만족한다는 게 이들의 한 목소리. "공부를 다 마칠 때까지 한국에 머무를 겁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는 계속 기억할 겁니다." 글·사진=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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