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의 세계' 그것이 궁금하다

입력 2009-06-06 06:00:00

나 또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지킨다는 것.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고 보호하는 '경호'(警護).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 남을 보호할 수는 없다. 완벽한 경호를 위해서는 그 사람(경호대상자)의 많은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태민(37) 경운대 경호학부 교수는 "경호대상자의 성격, 습성, 장단점, 친인척 및 교우관계, 취향, 활동범위 등을 모두 알아야 제대로 된 경호를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호원들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때는 자신보다 지켜야 할 대상자가 당연히 우선이다. 그 대상자가 대통령이든, 계약관계에 의한 일반인이든 그의 삶과 성격을 당사자보다 더 객관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정확한 상황파악과 판단, 대응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희생이 있고 나보다 남이 우선이기 때문에 경호는 아름답다. 그러나 실패한 경호는 경호대상자와 경호원 모두에게 쓰라림이고,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영화 '사선에서'(1993년 개봉)의 프랭크 해리건(클린트 이스트우드)은 화려한 전적에도 불구하고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당시 바로 곁에 있었지만 임무 수행을 다하지 못한 바람에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죄의식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현 대통령의 암살 음모를 내비치는 전화를 받은 뒤 대통령 경호를 자청한다. 하지만 실패한 경호에 대한 비난으로 동료들과 사사건건 불화를 겪는다. 결국 현 대통령의 저격을 몸으로 방어함으로써 과거 실수를 만회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서는 경호원들의 고뇌와 심리를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방영된 KBS 2TV 드라마 '강적들'은 청와대 경호원들의 생활을 낭만적으로 그려냈고, 영화 '보디가드'(1992년 개봉)도 사설 경호원과 뮤직 스타의 사랑을 애틋하게 그렸다. '보디가드'에서 레이첼 매론(휘트니 휴스턴)의 경호를 맡은 프랭크 파머(케빈 코스트너)는 일에 철저하고 냉정한 직업 경호원. 레이첼은 파머를 단순한 고용인으로 보고 무시하다 점차 그의 소중함을 경험함으로써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경호원들의 생활은 과연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낭만이나 사랑이란 요소가 현실적으로 스며들어 있을까. 경호생활 자체의 낭만이 가능할까. 지난해 8월 미국의 유명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이스라엘 군 출신 새 보디가드, 리 아다토와 사랑에 빠졌다는 염문설이 나돌기도 했다. 검정 양복에 눈에는 선글라스, 귀에는 이어폰을 착용한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들. 그러나 경호원의 세계는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결코 화려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는 게 전·현직 경호원들의 경험담이다.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위험 속에 항상 가져야 할 긴장감, 강도 높은 육체적 훈련, 사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등이 바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경호원들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공경호와 사(설)경호

공경호를 담당하는 경호원은 국가 공무원이다. 국가 경호원인 셈이다. 경호대상자는 대통령과 가족, 대통령 당선인과 가족, 대통령 권한대행과 배우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국가원수 또는 행정수반과 배우자, 경호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국내외 요인 등으로 한정된다. 국가 경호원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3년 12월 대통령 경호실이 창설되면서 출발했다. 5공, 6공 군사정권 시절까지 경호실은 대통령 비서실에 맞먹는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문민정부 이후 국가 경호원들의 이미지는 다소 부드러워졌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인 지난해 대통령 경호실에서 대통령실 경호처로 조직이 개편됐다. 사무관 이상 경호원들은 경호관, 그 아래 직급은 경호사로 불린다. 경찰에도 청와대 직속 경호원들이 있지만, 국가 경호원은 주로 대통령과 가족을 담당하는 청와대 경호원을 통칭한다.

사경호는 말 그대로 경호업체와 일반인 간의 계약을 통해 이뤄지는 민간경호를 말한다. 국내에 신변보호를 목적으로 한 경비업체(2008년 말 현재)는 모두 446개 업체(경호요원 1만1천여명)로, 이 중 대구 18곳(260여명), 경북 2곳(10여명)이 있다. 경호대상자는 주로 대기업 총수, 유명 연예인, 주요 정치인 등이다. 자녀의 안전한 등하교, 민감한 법정다툼, 스토커 방지, 대형 공연 등을 위해 경호원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청와대 경호실 출신 직원을 채용했고,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은 재임 시절 에스원 소속 태권도 유단자들을 경호 인력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 그룹도 정몽구 회장의 경호를 전담하는 경호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앙드레 김도 운전기사를 포함한 경호원 4명을 두고 있다. 유명 연예인의 공연이나 결혼식 등에는 일시적으로 경호원들이 대거 동원되기도 한다.

◆경호원들의 애환

사생활이 없다는 점이 경호원들의 가장 큰 고충이다. 또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앉거나 쉬지 않고 수시간 밀착경호에 따른 육체적 피로 등도 힘든 점이다. 대기업 총수의 경호원을 지낸 김태민 경운대 교수는 "가족행사, 데이트 등 경호기간 안에 개인생활이 전혀 없다는 것이 힘든 점"이라며 "화장실 이용을 위한 교대, 식사시간 등이 민감하고 어려운 때"라고 했다. 김 교수는 1인 경호의 맹점도 지적했다. 그는 "1인 경호는 '슈퍼경호'라고도 하는데, 경호대상자들이 경비절감 차원에서 요구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3명 이상이 돼야 안정적 경호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 때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때까지 20년간 청와대 경호원을 지낸 장기붕(56) 대경대 경호행정학과 교수는 "경호대상자가 원칙을 무시한 요구나 지시를 할 때가 가장 힘들다"며 "이를 슬기롭게 회피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전 상황에 대해 "대통령이 '어디 다녀와라'고 하더라도 경호관이 이를 슬기롭게 대처해 경호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맞다"고 했다.

서울 유명인 경호를 맡고 있는 최창식(28)씨는 "운전과 경호를 겸하고 있는데, 이 일을 한 뒤로 약속을 잡지 않는다. 언제 어떤 상황으로 근무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지키기 힘든 약속을 아예 하지 않아 사생활이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경호원을 지냈던 김명영(53) 대경대 경호행정학과 교수는 "국내외 출장이 잦았기 때문에 자녀 출산, 명절 등에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이 거의 없었다. 가정생활에 전혀 관심을 쏟을 수 없었던 게 가장 힘들었던 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경호인력 운영에 문제가 있었다. 1인 경호는 안전이 완전히 확보된 안가 등지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경호원들은 별 탈 없이 자신들의 임무를 완전히 종료했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 장기붕 교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으로 구소련과 중국 등과 수교를 맺을 당시, 정부대표단에 참여해 경호임무를 논의하고 이를 잘 수행했던 때가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장 교수는 1983년 10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수행해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벌어진 '아웅산 폭파사건'을 가장 끔찍한 일로 기억하고 있다.

◆경호원의 요건과 자질

경호원들은 ▷철저한 직업의식 ▷자기희생과 인내 ▷위해상황과 관련된 정보를 사전에 면밀히 검토한 뒤 적합한 경호를 수행하는 '두뇌경호' ▷경호대상자의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엄밀경호' 등의 자질이 요구된다.

또 경호활동을 통해 알게 된 경호대상자의 사생활이나 비밀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은 공경호와 사경호의 공통된 원칙이다. 김태민 교수는 이를 '듣고 보고 말하지 말라'는 것으로 요약했다. 경호원들은 일반무도뿐 아니라 경호무도도 필요하다. 일반무도가 상대방에 대한 제압이 우선이라면, 경호무도는 손발과 몸(체위)을 최대한 활용(확장)해 경호대상자를 보호하거나 현장에서 이탈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또 현대 경호는 체력과 무도를 기본으로 외국어와 전문지식까지 요구한다. 김태민 교수는 합기도 6단, 태권도 5단 등 무도 합계가 20단이지만, 두뇌경호를 더 강조한다. 경호공무원 시험에도 한국사, 세계사, 정치를 포함한 필기시험, 전자, 정보통신, 컴퓨터공학 등 전공시험(정보통신분야 지원자)도 치른다. 특별채용으로 외국어에 능통하고 국제적 소양과 전문지식을 지닌 사람을 임용하기도 한다. 물론 금치산자,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5년이 경과하지 않은 자 등은 공경호와 사경호 양측에서 결격사유가 된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 김명영 대경대 경호행정학과 교수 "전직 대통령들 경호계획 별말없이 잘 따라줘"

김명영(53) 대경대 경호행정학과 교수는 "경호원은 직업의식이 투철하고, 자기희생에도 불구하고 맡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초기인 2004년까지 21년을 청와대 경호원으로 근무했다.

김 교수는 "대다수 전직 대통령이 경호실의 경호계획에 대해 개인 의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충실이 따랐다"며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백담사에 있을 당시 산길을 가다 나뭇가지에 팔이 긁혔는데, '자네들이 가자는 대로 가지 않고 조금 옆길로 가서 미안하네'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고 했다.

김 교수는 특히 1인 경호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두뇌경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1인 경호는 특별한 상황 아니면 절대 안 된다. 경호는 혼자서는 불가능하며 2명 이상이 유기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에는 무도능력을 중시했지만, 요즘은 위해요소를 사전에 파악해 방지하거나 제거하는 예방경호와 이를 위한 자질을 갖춘 두뇌경호가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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