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과 닮아 정겨운 소보산…외계에 온 듯한 아소산

입력 2009-06-06 06:00:00

"진무천황의 할머니를 모시는 제사를 지냈다고 해서 이름이 소보산(祖母山)입니다. 좀 더 내려가면 큰할머니산도 있고…"

어딜 가든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었다.

'일본 초대 천황이었던 진무천황(神武天皇)의 할머니에 큰할머니까지 이야기 소재로 나올 줄이야.'

일본 규슈지역의 정중앙에 똬리틀어 규슈의 시작점처럼 보이는 두 산, 소보산과 아소산을 찾았다. 소보산은 한국의 산과 너무 비슷해 정감가는 산인 반면 아소산은 활화산으로 외계에 온 듯한 느낌이다. 이처럼 소보산과 아소산은 풍경이 달랐지만 최대한 손을 대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우선 공중에 녹색 병풍을 펼쳐놓은 듯한 소보산은 나무 뿌리가 계단 역할을 할 정도. 하지만 가파른 산행길 때문에 초행자들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쉴 새 없이 괴롭혔다. 산행 직전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일본인 아줌마 가이드의 말이 너무도 적절한 표현이었음은 산행 1시간 만에 뼈저리게 느꼈다.

"1시간쯤 지나면 네 발로 걸어야 됩니다."

◆소보산-지리산도, 설악산도 아닌 것이

소보산에 오른 산악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소보산을 설악산과 지리산과 비슷하다고 했다. 일반 일본의 화산과 달리 한국산의 운치가 어느 정도 스며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쉽사리 봉우리를 내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산을 오르기 전 해발고도 600m쯤에서 바라본 정상은 병풍처럼 여러 개의 봉우리가 연결돼 있었다.

'일본 100대 명산'에 포함되는 산인 소보산은 규슈지방 제일의 바위로 이루어진 암릉코스로 알려져 있다. 구로가네(黑金)능선. 소보산은 오이타(大分), 미야자키(宮崎), 구마모토(熊本) 3개 현에 걸쳐 있는 산으로, 현재는 휴화산이다. 주변은 광물자원이 풍부해 에도(江戶)시대부터 쇼와(昭和) 중기까지 채굴이 있었던 곳.

산에 들어서자 요란한 계곡물소리가 우리의 산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하지만 산행 도중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식수, 또 한창 산행을 하다가 어쩌다 드물게 나타나는 일본 산행객들의 '곤니치와, 스미마셍(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이라고 건네는 인사말이 일본산에 온 느낌을 실감나게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산을 오르내리며 "고생합니다. 다 왔습니다"라고 서로에게 격려하는 말을 건네는 줄 알았더니 일본도 비슷했다.

무엇보다 일본의 산행길은 외길이 대부분. 하지만 외길이라고 혼자 막 나가서는 곤란하다. 소보산에는 곰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곰을 사진으로 찍으면 30만엔의 돈을 준다는 말도 오갔다.

하지만 소보산 감상의 핵심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원시림. 실제 소보산은 삼나무 천지였다. 눈 가는 곳마다 울창한 삼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메이지유신 때 심었다는 것들이 150년 후 쭉쭉 뻗어 자태를 뽐낸다. 누가봐도 탐이 날 정도다. 100년이 넘는 원시림이다보니 둘레 4m를 훌쩍 넘는 나무가 적잖았다.

암벽에 사다리를 설치한 곳도 있고, 짧지만 로프가 걸린 곳도 있지만 큰 어려움은 없다는 게 산악 전문가들의 한목소리. 하지만 초보자들의 경우 오르기가 쉽잖다. 유격훈련을 한다는 생각으로 오르면 딱이다. 다리가 절로 후덜거린다.

1천768m의 정상에 오르기까지 5시간 남짓.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케보노쯔쯔지(アケボノツツジ, 철쭉의 일종)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흡사 지리산 다래봉의 철쭉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5월에는 일본인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

◆아소산-거대한 분화구, 그 속에 또 하나의 분화구

세계 최대의 칼데라로 이루어진 화산, 구마모토현의 아소산(阿蘇山)은 규슈의 정중앙에 있는 산. 면적 380㎢, 동서 18㎞, 남북 24㎞, 둘레 128㎞의 아소산은 아소 5악으로 불리는 고다케, 다카다케, 네코다케, 기시마다케, 에보시다케는 현재도 활동 중인 활화산이다. 특히 나카다케는 마그마가 부글거리고 있어 꿈틀대는 아소산의 신비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화구(火口)를 보러 올라가는 관광코스가 유명하기도 하다. 트레킹 코스는 여느 산들처럼 어느 정도 발품을 들여야하지만 화구까지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게 해뒀다. 평소에는 15~2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정상까지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이 산이 매력적인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활화산이라는 점. 하지만 화구 근처에는 구름처럼 유황가스가 뿜어져 나오는데, 맞바람이 불면 바로 대피소로 피해야 될 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실제 화산활동이 심상치 않을 때는 관람을 금지시키는 곳. 게다가 날씨마저 변덕스러워 맑은 날 아소산을 본 사람이 적다고 한다.

실제로 아소산 정상에서는 시종일관 '가스에 유의하라'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최근까지 화산폭발을 했던 아소산은 3천만년 전부터 폭발해오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은 10만년 전에 있었던 대폭발로 만들어진 것. 지금도 계속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활화산이 100개 가까이 있다는 일본에서도 분화구까지 갈 수 있는 곳 중 가장 큰 산이기에 흡사 외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소보산과 아소산으로 가려면

소보산과 아소산은 구마모토현의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곳이다. 특히 아소산은 오이타현에도 접해 있지만 구마모토에서 오를 경우에만 활화산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두 산의 거리는 지도상에서는 50분 안팎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쉽잖은 길이다. 소보산에서 아소산으로 가려면 무엇보다 산허리로 구불구불하게 난 길인데다 차로마저 험해 특히 야간에는 구마모토현 동부지역을 이용해 내려간 뒤 에둘러 고속도로를 이용해 다시 서쪽으로 진입해야 한다.

후쿠오카에서 아소산으로 갈 경우 기차를 이용해 구마모토시까지 간 뒤 아소역까지 갈 수 있다. 활화산 관광객이 많아 대중교통 이용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소보산은 대중교통이나 숙박 등 인프라가 미약한 편이다. 철도가 없다. 일본인들도 모두 자가용을 이용해 온 듯 소보산 초입 주차장에서 본 자동차 번호판의 지역은 제각각이었다. 글·사진=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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