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뮤직 유토피아를 꿈꾼다
이 정도면 안주해도 될성 싶다. 이승철이라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한국 가요계에서 그의 위치는 충분하다. 그런데 이승철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는 매년 음반을 내고 5월에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대규모 야외 공연을 했다. 올해도 이승철은 10집 음반 '뮤토피아'(Mutopia)를 내고 전쟁기념관에서 공연을 했다. 예년과 다름없이 공연은 성황리에 끝이 났다. 이승철의 힘이다. 곧이어 전국 30개 도시에서 투어 공연을 할 예정이다.
'라이브의 황제' 이승철은 데뷔 25년이 됐는데도 새 음반이 나오면 신인처럼 적극적으로 음반을 알린다. 이번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와인바에 기자들을 불러 신보 수록곡 한 곡 한 곡을 소개했다. 기자들의 손을 꼭 잡고는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부탁까지 한다. "안 도와줘도 잘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 그는 "아니다. 여러분들과 팬들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며 손사래를 친다. 한 해 한 해 더 친근해지는 스타가 이승철이다.
"이번 앨범은 이전과 다릅니다. 뻔한 이승철표 발라드 음반을 냈다는 소리가 듣기 싫었어요. 발라드이긴 하지만 밴드와 록에 기반을 둔 앨범이죠."
이번 앨범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노래가 타이틀곡 '손톱이 빠져서'다. 다소 호러성(?) 제목과 달리 노래는 부드러운 브리티시록 계열의 발라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와 달라며 손톱이 빠지도록 꼭꼭 눌러 편지를 쓴다는 내용의 노래다. 그의 노래 '긴 하루'를 작곡한 전해성이 작사'작곡을 했다. '황제' 밴드가 들려주는 섬세한 사운드가 일품이다. 발표된 지 한 달이 채 안 됐지만 인기가 뜨겁다. 제목이 좀 강하다고 하자 '총 맞은 것처럼'보다는 덜 아프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떤다.
"이번 앨범은 그룹 '부활'의 보컬 시절을 그리워하는 올드 팬들에게는 밴드 음악의 감성을 채워 주는 앨범입니다. 젊은 팬들에게는 기계음 대신 실제로 연주한 라이브 음악을 선물로 들려주고 싶었고요."
그는 지난번 앨범에서 이승철표 발라드 '사랑한다'를 타이틀곡으로 했다. 수록곡 '프러포즈'는 사춘기인 딸에게서 영감을 얻어 그가 직접 작사했다. 이렇듯 이승철은 자신의 모습을 지난 음반 안에 가득 담았었다. 그런데 이번 음반에선 오히려 이승철 자신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냥 '황제' 밴드에게 맡겨 놓고 나는 가서 노래만 했다고 말하는 그다.
"조용필 선배가 부러웠던 건 바로 '위대한 탄생'이라는 밴드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실력파 밴드인 '황제' 밴드가 있죠. '황제' 밴드가 이번 앨범에 절반 이상의 곡을 썼습니다. 밴드 멤버인 최원혁이 프로듀싱을 했고요. 내 자작곡은 일부러 뺐어요. 제 생각을 너무 많이 집어넣으면 음악적으로는 퇴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죠. 저를 배제한 덕분에 신선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음반에는 록 장르의 노래만 담긴 게 아니다. 최원혁이 작곡한 '레게 나이트'(Reggae Night)는 이승철이 처음을 시도하는 레게 장르의 노래다. 이 밖에도 음반에는 밴드에서 건반을 맡은 유미란의 곡 '너 때문에 눈물 흘린다', 기타리스트인 박창곤의 곡 '넌 잊었는지', 드러머인 이상훈의 곡 '마이 걸'(My Girl)등을 실었다.
음반에는 원래 이승철표 발라드도 한 곡 실릴 뻔 했다. 그러나 이승철은 이 노래를 일부러 뺐다. 8집의 '소리쳐'를 쓴 작곡가 홍진영의 곡인 '사랑은 힘들다'(가제)가 그 노래였다. 음반에 실렸다면 당연히 타이틀감이었지만 음반의 통일성을 위해 과감하게 수록곡에서 제외했다. 이승철표 발라드에 대한 목마름은 드라마 OST로 앞서 발표된 '듣고 있나요'와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가 채워 줬다. 히트 제조기 조영수 작곡가가 만든 두 노래는 음반의 11번과 12번 트랙에 이름을 올렸다.
이승철은 이번 음반에 4억원을 들였다. 굳이 돈 얘기를 하지 않아도 그의 10집은 자타가 공인하는 '웰메이드' 음반이다. 책처럼 만든 앨범은 그 자체로 소장 가치를 지닌다.
사진은 유명 사진작가인 조선희 작가가 찍었다. 우포늪에서 찍은 몽환적인 느낌의 사진은 그가 추구하는 '뮤직 유토피아'의 느낌을 한껏 살렸다. '뮤직 유토피아'는 곧 '뮤토피아', 10집의 제목이다. 음반은 이렇게 사진과 음악 등 모든 면에서 하나의 주제를 관통한다.
"디지털싱글이 보편화되면서 음악 시장이 점점 인스턴트화하고 있습니다. 쉽게 음반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사람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호재이자 기회이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음악 시장에 위험할 수도 있죠. 웰메이드 음반이 사라지고 빠른 호흡의 디지털 싱글만 남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승철은 음악시장에 대한 걱정과 함께 중견 가수로서의 책임감도 강하게 느낀다고 했다. 이런 때일수록 중견가수들은 더 좋은 음반을 만들어 후배 가수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9집 발매 당시 CD로 내는 마지막 음반이 될지 모른다고 했던 그가 전작보다 더 알찬 10집을 들고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쉽게 음반을 내는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이 투자해야 할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영화계가 어려워도 블록버스터가 제작되는 것처럼 음반도 구매력 있게 만든 블록버스터가 나와야 합니다. 이번엔 엠넷미디어와 음반 제작, 유통 계약을 맺으며 자본을 확보했고 이를 음반 제작에 충분히 사용했습니다. 11집과 12집은 더 많은 돈과 정성을 쏟으려 합니다.
이렇게 이승철이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의 힘이 커 보인다. 재혼을 한 후 이승철은 한층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가수가 됐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도 아내인 박현정씨가 어김없이 참석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딸과 생후 10개월인 아기도 깜짝 등장했다. 가족이 총출동한 셈이다. 가족과 함께한 이승철의 얼굴에 미소가 담뿍 묻어난다.
'나에게는 날개가 있다. 가족이라는 날개, 음악이라는 날개, 믿음이라는 날개와 인연이라는 날개, 그리고 팬이라는 소중한 날개가…. 마치 손가락 같은 멋진 다섯 날개를 펴고 영원히 이 세상을 누비고 싶다'는 그의 음반 에필로그처럼, 이승철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행운의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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