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환 기획, 이기담 지음 /푸른역사
'바보'이야기로 새삼 세상이 들썩거린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했던 이를 두고 마음 놓고 바보라고 부른다.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고구려사 전문가인 임기환이 기획하고 소설가 이기담이 썼다. 저자 이기담은 어렸을 적 어머니 무릎 위에서 들은 온달 이야기에다 평강공주의 내조에 힘입어 출세한 행운의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전래동화와 국문학의 테두리 안에 있었던 신화한 온달의 역사적 실체를 찾아 나선다. 역사학자 임기환이 이 길에 동행하므로 순전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상당한 역사적 근거를 갖춘 접근을 하게 되는 셈이다.
소설가는 1천400년 전 온달 이야기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전해졌는지, 그 생명력의 원천은 무엇인지, 혹시 온달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바보'라는 수식어 때문은 아니었는지 궁금해 한다. 하지만 역사학자의 눈에 비친 온달은 바보가 아니다. 역사학자는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일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온달의 실존 여부와, 실존했다면 어떤 신분이었으며 평강공주와의 사랑이 가능했는지 여부, 전사한 곳은 어디였는지 관심을 갖는다. 현재로서는 온달이 설화 속 인물인지 실존 인물인지 명확한 답을 말하기 어렵다고 한다.
온달 기록은 사실적 요소와 설화적 요소가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온달에 대한 유일한 기록인 '삼국사기' '온달전'에 따르면 온달이 살았던 시기는 고구려 평원왕과 영양왕 때였다고 한다. 온달의 실존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은 이유는 고구려와 같은 신분제 사회에서 최고급 귀족도 아니었던 온달이 공주와 결혼했다는 점, 여자인 평강공주가 그 결혼에 적극적이었다는 점, 그리고 온달의 시신이 담긴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또 바보온달이 바보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뛰어난 무공을 세워 대형이란 벼슬을 받은 점과 북조 무제와의 전쟁에 출전해 승리한 점, 신라와 벌였던 아단성 싸움이 '삼국사기' 본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온달전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데 장애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온달은 하급 귀족이었고, 온달이 평강공주와 결혼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북주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뛰어난 무공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이기백 선생은 온달이 이 전투에서 정도를 넘는 큰 공을 세웠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가령 위험에 부닥친 왕을 구출하는 따위를 상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고구려가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한강 유역을 되찾는다는 고구려인의 숙원을 실현시켜 줄 인물에 대한 기대도 컸을 것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온달은 당시의 경제 발전에서 비롯된 사회 변동 과정에서 새롭게 떠오른 하급 귀족이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그런데 온달은 왜 바보가 되었을까? 이 대목에서 역사학계의 거두 이기백 선생이 온달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소개된다. 이기백 선생의 스승인 함석헌 선생이 미치광이 취급을 받고 살아남는 걸 보고나서였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5'16 직후, 함석헌 선생은 '사상계'에 5'16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고, 선생은 곧 5'16주동자들에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회적인 반향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함석헌 선생을 죽일 수도 감옥에 가둘 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정신이상자로 몰기'였다.
이기백 선생은 여기서 온달이 바보로 불린 까닭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온달이 진짜 바보가 아니라 바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충북 단양에 가면 온달산성이 있다. 단양에는 온달산성 말고도 온달과 관련한 지명들이 꽤 남아 있고, 얼마전에는 온달의 무덤이라 추정되는 곳을 발굴했으나 무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서울 아차산에도 온달과 관련한 유적들이 남아 있다. 온달이 우리 역사에 남긴 흔적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를 뛰어넘어 살아남는 온달이야기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우리 시대 민중들의 가슴속에 새겨지는 역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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