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연구는 필생의 업"
그는 찬 바람이 불어 부산안면옥 문을 닫으면 곧바로 여행을 시작한다.
"1983년부터 여행을 시작했어요. 여행 자유화 전이었는데, 배낭 하나 둘러메고 가족들과 함께 이국 땅의 산간 오지를 누볐지요."
방씨는 미국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역사가 200년밖에 안 되는 나라가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기독교 국가를 탐방하며 그 이유를 찾기도 했습니다."
그의 발길은 도시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 나라 산간벽지까지 샅샅이 훑어내야 직성이 풀린다.
남들보다 먼저 선진국을 여행한 그는 우리나라에 적용할 만한 여러 가지 제도나 방안들을 정부에 8년여간 꾸준히 제안하기도 했다.
그의 여행 방식이 바뀐 것은 1990년대 초, 그의 관심은 돌연 일본 고대사로 돌아선다.
"친구들이 함께 해외여행을 가자고 하더군요. 의미 있는 여행을 찾다가 20여명을 인솔해 일본에 갔습니다. 일본의 신사를 미리 조사하다 보니, 일본의 제신(祭神) 중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일본을 헤매고 다녔다. 시간 나고 돈만 생기면 배낭 메고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 오지의 고분, 동굴은 물론이고 일본 헌책방을 뒤지며 관련 문헌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일본 신사 중엔 백제신사, 박혁거세 신사, 가야 신사 등 우리나라 이름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곳이 아주 많아요. 그런데 그런 곳마다 쓰레기장처럼 폐허가 돼 있어요."
분하고 한탄스러웠다. 그는 일본 전역을 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사진을 찍어 주한일본대사관에 항의편지와 함께 보냈다. 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는 "항의사항을 조사한 결과 사실"이라며 "즉시 시정하도록 했으니 다시 일본을 방문해 확인해주길 바란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 사람의 열의가 역사의 일부를 바꾸는 순간이다.
그는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일본역사왜곡에 맞서는 고대사 자료들을 찾아나갔다. 때로는 우리나라 학계의 무지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반박하기도 했다. 평양이 고향인 그는 "일본의 고대사는 가야사입니다. 가야 사람들이 칼을 빼들고 싸워야 하는데, 아무도 없으니 나 고구려 사람이 연구하잖습니까"라며 농을 치기도 했다.
그는 노후를 외국 어느 휴양지에서 멋지게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학계가 농땡이 치니까 휴가를 반납하고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고 있는"거다.
일본 고대사를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선 일본 고대어까지 알아야 하는데 그럴 만한 어학능력을 갖춘 학자가 흔치 않아 그는 늘 안타깝다.
"외국어의 기초를 확실히 다지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우루과이 라운드 조약이 엉터리로 작성돼 우리가 불이익을 본 게 한두 가지입니까. 외국어도 카이스트처럼 전문대학을 만들어야죠."
그의 목소리가 냉면집을 쩌렁쩌렁 울린다. 긴 시간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다. 그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건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 고대 신 중 한국어가 관칭으로 사용된 신들이 있어요. 이것은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지점이죠. 아직 우리 학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250여년 전 일본학자가 찾아낸 사실입니다. 오래된 문헌에서 발견했죠."
그는 요즘 냉면집 문을 닫으면 이 오래된 책을 번역하느라 바쁘다.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스탠드 확대경을 놓고 일본 고대사연구에 분투하고 있다. 그 사명감으로 건강하게 버틴다고 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많은 것을 봐온 그는 하고픈 말들도 많아 부산안면옥 입구에 세계 곳곳의 사진과 설명을 써두었다.
"한일 고대사 연구는 제 필생의 업입니다. 그 숙제를 끝내면 좀 여유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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