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41 /
世味多端我自如 세상 맛은 여러 갈래지만 나는 그대로 있어
是身天地一거저 이 몸은 천지간에 하나의 병신이구나
山堂日午寂無事 산속 서재엔 해가 한낮인데 일도 없이 고요해서
臥曝腹中千卷書 누운 채로 뱃속에 든 일천권 책을 볕에 말린다네
매월당 김시습의 기행과 기벽을 모두 계유정난의 단종애사와 연관시킬 필요는 없겠지만 이 공전절후 천재의 불우함이 빚어낸 명암은 몇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탄식을 금지 못하게끔 한다. "世味多端我自如 세상 맛은 여러 갈래지만 나는 그대로 있어"란 인심의 변천이나 절개를 지니지 못한 자들에 대한 조소이다. "是身天地一거저 이 몸은 천지간에 하나의 병신이구나." 거저란 대자리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대자리 하나면 어디서든 누울 수 있다는 자유인의 활발함이 엿보이지 않는가. 첫구와 합치면 권력과 영화에 집요 집착하는 인간에 대한 슬픔이 있다. "山堂日午寂無事 산속 서재엔 해가 한낮인데 일도 없이 고요해서"란 구에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탄식이 강하다. "寂無事 일도 없이 고요"하다고 자탄하지만, 그따위 세상일이란 너무 하찮다는 자의식도 엿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지막 구에 도달해서 오불관언, 활개치듯 토해내는 말에 15세기 시인의 일갈이 배여있다. "臥曝腹中千卷書 누운 채로 뱃속에 든 일천 권 책을 볕에 말린다네"! '와(臥)', '폭(曝)' 두 글자가 지닌 의미를 되새겨보면 시인의 일생을 지배한 단종애사의 전말기가 마음을 애끓게 한다. 권력과 영화를 덧없음에 매달고 책에 파묻히는 김시습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절창이 아닌가 싶다. 조선 명종 때의 윤춘년은 매월당을 사모하여 그의 『금오신화』를 간행하고, 심지어 "김시습은 동방의 공자이시다. 공자를 보지 못했으면 김시습을 보면 될 것이다"라고 하여 율곡으로부터 "그가 김시습에게서 취한 바는 모두 세상에서 전하는 괴기한 일로서 김시습이 실제로 한 일은 아니다"라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 김시습 사후 그의 마니아들이 끊임없이 존재했다는 증거이다. 그 모두가 비탄의 마음을 그대로 이승에 남긴 시인의 탄식에 다름 아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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