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만만 표준어' 헌법재판소 결정 파장

입력 2009-05-29 10:51:49

"사투리 천시·위축, 서울의 언어 독재"

"사투리를 천시하는 국가는 전세계에 대한민국밖에 없다."

28일 '서울말만 표준어로 규정한 현행 국어기본법 조항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해 국어학자, 문학가 등은 "우리 고유의 언어를 말살하는 것" "전형적인 중앙중심적 사고"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어기본법 합헌?

헌재 전원재판부는 28일 지역어 연구모임인 '탯말두레' 회원과 전국 초·중·고교생 및 학부모 123명이 "지역 언어의 특성과 기능을 무시한 채 서울말을 표준어로 규정하고, 표준어로 교과서와 공문서를 만들도록 한 국어기본법은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교육권을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국어기본법 제14조와 제18조는 각각 공문서를 작성할 때와 교과서를 편찬할 때 어문규범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어문규범은 표준어규정과 한글맞춤법, 외래어표기법 등을 말하며, 표준어규정 제1장 제1항은 표준어를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서울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문화를 선도하는 점,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점, 지리적으로 중앙에 있는 점 등 다양한 요인에 비춰볼 때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한다 하기 어렵고 서울말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으므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은 합헌 의견을, 2명은 위헌 의견을 냈다.

위헌의견을 낸 이동흡 재판관과 부산지역 향판 출신인 김종대 재판관은 "지역어도 누대에 걸쳐 전승된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임에도 표준어에서 배제해 해당 지역민에게 문화적 박탈감을 주는 것은 표준어 선정의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고 서울말만 표준어 기준으로 삼기에는 지나치게 좁고 획일적"이라고 밝혔다.

헌법소원을 낸 '탯말두레'는 사투리 가치를 지키기 위한 네티즌들의 모임으로, 2005년 언어치료사와 국어교사, 시인, 출판사 대표 등 5명으로 시작해 2006년 '전라도 우리탯말'과 '경상도 우리탯말'이라는 책을 냈다.

◆반발… 논란…

헌재의 결정에 대해 지역 학계는 '서울 언어독재의 발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북대 백두현 교수(국어국문학과)는 "헌재가 방언의 다양한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내린 결정"이라며 "수도의 지역어를 표준어로 쓴다는 규정을 두고, 표준말만 강조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대구가톨릭대 이은규 교수(국어국문학과)는 "그동안 서울말 우대정책 때문에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별 사투리가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인해 더 위축될까 걱정"이라며 "같은 지역에서 쓰이는 사투리는 그들 생활의 오랜 경험과 지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인 만큼 어문규범에 포함시켜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립국어원장을 역임한 경북대 이상규 교수(국어국문학과)는 "현재의 '폐쇄적인 표준어 개념'에서 지역 방언, 전문 용어, 한문 용어, 외래어 등을 모두 아우르는 '확장된 공통어 중심의 다원주의'로 어문 정책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며 "일본만 해도 각종 언어사전만 33권에 달할 정도로 관심과 조사가 활발한데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탯말두레' 관계자는 "소설 '태백산맥'처럼 문학적 표현이 풍부한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 젊은 작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서울말 중심 정책의 역기능"이라고 꼬집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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