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북핵이 간과한 것

입력 2009-05-28 10:54:35

북한이 또다시 핵실험을 감행했다. 핵실험 탐지를 방해하기 위해 동해상에 다섯 발의 단거리 미사일까지 쏴올렸다. 무력 시위가 강도를 더할수록 김정일 정권이 얼마나 체제 유지에 조바심을 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차 핵실험이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으니 이만하면 관심 끌기에는 성공했다. 게다가 2006년 1차 핵실험 때보다 위력이 10배 이상이라는 전문가 진단까지 나와 핵기술에 대한 홍보효과까지 톡톡히 누렸다. 이 추세대로라면 북한 핵의 완성은 가까운 어느 시점에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핵실험에는 반대급부가 따른다는 점이 북한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유엔 안보리가 소집되고 러시아까지 나서서 강한 제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도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도 어저께 미뤄왔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발표했다. 누르면 누를수록 더욱 단단히 보호막을 치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에 비춰 볼 때 핵실험은 북한의 생존과 동북아 안보 지형을 바꾸는 큰 파장이 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 북핵에 대해 '우리를 겨냥한 게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목적'이라고 언급했다. 아직 북한이 핵무기를 우리나 미국'일본을 향해 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할 길은 없다. 파키스탄의 핵 개발 사례는 북한의 핵 종착점을 읽어내는 데 좋은 비교감이다. 하지만 핵실험은 북한 정권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의 오판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결코 고정된 안전판이 아니다. 지각이 수시로 변동하듯 북한 내외부의 상황 변동과 충격에 흔들릴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인내심의 한계나 남북 간 국지적 충돌 가능성, 일본의 우경화는 북핵의 지위를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외부 요인이다. 최근 권력의 고삐를 바짝 당긴 북한 군부의 행보도 한반도 안보 상황을 위태롭게 하는 매개 변수다.

따라서 북한 핵을 보다 전략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북핵이 지닌 실체적 의미를 알아낸다면 현재 북한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북한은 석유의 90%, 식량의 45%가량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미 소비재의 80%를 중국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처지에서 북한의 대중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경제 종속이 심화되는 구조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차단된다면 북한은 어떻게 될까. 혈맹이라는 북'중 관계를 고려할 때 그 가능성은 높지 않겠지만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연결고리가 끊길 경우 바로 심각한 고립을 의미한다. 이런 외통수를 타개하려면 한국이나 미국'일본과의 관계 개선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방에 따른 북한 내부의 동요에다 외부 여건까지 여의치 않다.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선의적 무시'가 계속될수록 북한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 와병설과 후계 구도가 맞물리면서 내외부적으로 강경책이 득세하는 것도 일이 의도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북한의 벼랑 끝 전술도 이제 약발이 통하지 않는다. "서울이 여기서 5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PSI 참여는 전시 상황"이라고 계속 위협하면 내적인 요소는 충족시키겠지만 대남 관계는 효력을 잃게 되어 있다. 서해북방한계선(NLL)과 서해 5도를 겨냥한 제3의 무력 도발도 북한으로서는 결코 얻을 게 없다. 무엇보다 체제 유지를 위해 선군의 위엄을 내세우고 아무리 주체와 자력갱생을 부르짖어도 최면술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북한 권력 집단은 알아야 한다. 부시 행정부 당시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였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때와 달리 현재 전 세계 누구도 오바마 행정부를 비난하는 곳은 없다. 북한이 이를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제대로 짚은 것이다. 북한과 같은 비정상적인 권력 집단이 도덕의 위엄을 갖춰 가고 있는 오바마와 정면 충돌한다면 승부는 뻔하다. 김정일 정권은 핵에 기댈 게 아니라 도덕의 위엄을 키우는 데 힘써야 한다. 그게 현재의 북핵이 놓치고 있는 해법이다.

徐 琮 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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