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단오

입력 2009-05-28 06:00:00

내가 어릴 때 우리 집 샘가에 창포가 자라고 있었다. 사투리로 '쟁피'라 하였다. 뿌리는 점점 땅을 넓게 차지해나갔고, 펜싱 칼처럼 좁고 긴 줄기는 하늘로 향하여 힘차게 뻗어나갔다. 색깔도 윤택한 초록색이었다. 단옷날이 되면 동네 부녀자들이 우리집에 와서 창포를 잘라 갔다. 여자들은 자른 창포를 끓여서 그 물로 머리를 감고 창포 뿌리를 깎아 수복(壽福)이라고 글씨를 써서 그 끝에 연지를 발라 비녀처럼 꽂고 다녔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창포는 또 언제 베었냐는 듯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창포는 그 향기가 독특하여 벽사의 힘이 있다고 믿었다. 꽃은 100년에 한 번씩 핀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창포꽃을 보지는 못했다.

음력 5월은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달이다. 양(陽)의 수가 두 번 겹치는 5월의 5일 단오를 우리말로 '으뜸 날'이라는 뜻인 '수릿날'이라 한다.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하여 만물이 생기가 도는 시기라는 뜻일 것이다.

단오에는 백희놀이를 한다. 백희에는 나례 행사와 춤판을 벌였다. 남자들은 씨름을, 여자들은 그네를 뛰고 놀면서, 농사일에 바쁜 가운데 하루를 쉬며 즐겼다.

그네뛰기는 북방민족에서 기원하여, 고대 중국으로 흘러들었다 한다. 당나라 때는 민간에 널리 전파되어 여자 놀이로 정착되었다. 그네뛰기는 본디 말을 타는 북방민족들이 동작을 민첩하게 하기 위한 운동이라 한다. 또 오늘날 우리의 씨름은 고구려 벽화고분 씨름 무덤에 나타나고 있으며, 김홍도의 씨름도와 모습이 같다. 그러니 그네뛰기와 씨름은 그 기원이 막연히 북방민족이라 하지만 아마도 우리 민족의 먼 조상인 동이족의 풍습일 것이다.

200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인 강릉 단오제가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그러자 중국에서 "한국이 중국의 고유 문화인 단오를 빼앗아갔다"고 하여 반한감정이 일어났다.

중국의 단오는, 전국시대 초(楚)나라 관리이며 시인인 굴원이 모함을 받아 왕의 신임을 잃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해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을 기념하는 행사다. 중국인들은 단옷날 대나무잎이나 갈댓잎에 찹쌀을 넣어 찐 쭝쯔라는 떡을 먹고, 용주(龍舟)경기를 벌인다. 반면에 강릉단오제는 굴원과는 전혀 관계없는 우리의 풍속으로 수릿날을 그 기원으로 한다. 대관령 산신을 모셔와 대관령 산길의 안전한 통행,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 제의이다. 따라서 강릉단오제와 중국 단오절은 이름만 같을 뿐 기원과 내용이 전혀 다르다.

중국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어림없는 일이다. 단오는 자연에 순응하여 사는 우리 조상들이 만든 현명하고 아름다운 고유의 세시풍속이다. 바쁘고 힘든 농사일에서 잠시 틈을 내어 여름의 도전에 임하는 새로운 자세를 다지는 날이다.

추연창 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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