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새벽부터 고요하게 진행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 행렬은 낮 12시 30분쯤 깨졌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고 욕설이 난무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등 당지도부 50여명이 봉하마을 입구에 나타나자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가로막고 나섰기 때문.
박 대표를 비롯해 정몽준 허태열 공성진 박순자 송광호 박재순 최고위원과 안경률 사무총장, 김효재 대표 비서실장, 조윤선 대변인, 김태호 경남지사와 당직자 등 50여명이 빈소를 향해 다가가자, 100여명의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사복경찰, 의경, 취재진 등 300여명이 왕복 2차로 도로 위에서 뒤엉켰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사복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1km 가까이 전진했지만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몸싸움을 벌이며 결사적으로 막아섰다. 고함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고 밀고 당기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한 지지자는 "한나라당 역적들이 어디라고 여길 오느냐. 목숨걸고 막겠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일부 시민들은 도로에 드러눕고 연좌농성을 하면서 인간 저지선을 구축했다. 야트막한 산위에서 대치 상황을 지켜보던 일부 조문객들도 '차비 줄 테니 돌아가라'며 야유를 보냈다. 지지자 몇 명이 들고 있던 물병 3,4개를 던져 일부 일행은 물세례를 받기도 했다.
마을 입구에서 막히는 바람에 박 대표 일행은 빈소 앞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이 달려와 "큰 결례다. 분향소까지 모셔야 하는데 상황이 어렵다"며 양해를 구했고, 박 대표는 "이해한다. 당을 대표해 대신 조의를 표한다"고 대답했다. 결국 한나라당 지도부는 마을 입구에 들어선 지 20여분 만에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를 지켜보던 지지자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경남 김해시의 이모(41)씨는 "낮에 잠깐 들르고 야밤에 또다시 도둑 고양이처럼 올 줄 모르니까 끝까지 우리가 마을 입구를 지키자"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조문객들은 "조문하러 온 것인데 다들 너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시민은 "아무리 노 전 대통령 서거로 한나라당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더라도 인간적 도리를 하려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인사 등이 물세례와 욕설을 받으며 잇따라 쫓겨난 데 대해 여야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김형오 국회의장,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 박근혜 전 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등 보수 성향 인사들은 봉하마을을 찾았으나 조문하지 못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도 거부당했다. 윤 장관은 참여정부 시절 금융위원장으로 일했고 노 전 대통령과 30년 막역지우이지만 이명박 정부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유로 막혔다. 무소속 정동영 의원과 민주당 추미애 의원 등 야권 인사들도 노 전 대통령과 정치 노선을 달리했다는 이유로 수모를 당했다.
조문 거부 행위가 계속되자 문재인 전 비서실장 등 노 전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설득에 나섰다. 천호선 전 대통령 홍보수석도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 등을 만나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세력의 조문을 거부하는 것은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며 진정한 국민 통합을 바랐던 고인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검찰 수사 등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인식 탓이다. 노혜경 전 대표는 "조문 거부는 노사모의 뜻이 아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서명수·장성현·임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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