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 MB의 새로운 과제

입력 2009-05-26 10:43:57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결'했다. 더욱이 절벽에서 뛰어 내리는 가장 확실한 죽음의 방법을 선택했다. 자신으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는 것이 유서에 남긴 자결의 이유다. 고인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라고 했지만, 문제는 다른 누구도 그렇게 느끼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오히려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증오로 폭발해서 이명박 정부의 이후 국정 운영을 치명적으로 위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올 상반기를 휩쓴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 검찰은 권력층 비리 수사였을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미친 적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문자 그대로 쉴 새 없이 전직 대통령 수사에 대한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 악의가 선연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빨대'(내부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사람)를 색출하겠노라고 기염을 토했다. 코미디였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의 '해명'을 비웃으며, 박연차씨와의 대질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정작 이 조직의 수뇌인 임채진 총장은 삼성의 전 법률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떡값 검사' 혐의를 해명서 하나로 간단히 벗은 바 있다. 현직 대통령의 측근과 친인척 간에 얽힌 의혹들에도 지극히 둔감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과 그 일가에 대해서는 조직 그 자체가 '빨대'고 '칠성판'이었다.

또한 그동안 노무현 일가에 대한 검찰의 압박은, 정부'여당이 국정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로 보이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던 때는 정부'여당이 인터넷과 집회'시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공언하며, 정부 유관 연구원이나 교육기관(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비판세력을 압박하거나 축출하던 시기였다.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 여럿 있다. 그리고 이렇게 겁주고 기를 꺾으며 적당한 수위로 사법처리하면서 힘으로 몰아붙이면, 고인도 다른 역대 대통령들처럼 유들유들하게 넘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는지도 모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결은 그가 도덕성을 생명처럼 여기던(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른바 민주화운동 세력의 상징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집권한 민주화 운동가'였다. 일각에서는 그가 이끈 참여정부를 '좌파'라고 불렀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실제로 한 일은 좌파와는 거리가 멀다. 참여정부는 오히려 흔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라고 불리던 미국 중심의 국제경제질서에 한국을 적극적으로 편입시키려고 노력한 정권이었다. 이런 노력의 정책적 표현이 바로 자본시장통합법과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이며 한'미 FTA 타결이었다. 정부'여당은 참여정부를 좌파라하면서도 전임 정권의 국정기조(금융'서비스업 중심으로의 산업구조 개편 및 개방 확대)를 맹종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 왔다. 혹자는 참여정부를 친북 성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참여정부의 친북 성향(?)은 오히려 점진적인 흡수통일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야당 시절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공격하던 현재의 정부'여당이 국제외교의 이단자인 북한이 뻣뻣한 태도를 바꿔주기를 얼마나 갈망하는지 지켜보라.

문제는 결국 이명박 정부의 국정 주도권과 사회통합 능력이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것도 세계적 경제 위기에 따라 산업과 노동 관행, 사회제도 등의 조정을 국민적 공감과 동의를 얻어 급속히 추진해야 하는 시기에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진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자결로 인해 힘으로 밀어붙여 국정 주도권을 굳히려고 한 정부'여당의 시도는 참담하게 실패했다. 비판 세력들은 고인에게 가해졌던 모욕을 자신의 치욕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이는 자칫 '복수의 정치'로 귀결될 수 있다. 국민적 불행이다. 더욱이 정부'여당 내에서도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이명박 정부는 정부'여당과 검찰 등 권력기관 내에서 '힘으로 몰아붙이기'를 주도한 강경파들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하면서 국정운영 기조를 재정립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른바 친이 세력의 벼락 출세를 위한 이상한 공천으로 친박 세력도 포용하지 못하는 정부'여당의 자기관리 능력을 보면 이들이 '노무현 서거'의 충격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종태(금융경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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