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30년만에 빛 본 힙합 소울 가수 '바비 킴'

입력 2009-05-23 06:00:00

가수를 꿈꾸는 한 아이의 아버지는 MBC 관현악단 트럼펫 연주자였다. 이 아이가 두살 때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아버지는 공연도 하며 즐겁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현실은 밑바닥 생활이었다. 아버지는 클럽이나 악단의 연주자가 아닌 공사판의 페인트칠, 방수공사, 타일 붙이기 등 막노동을 했고, 어머니는 공장이나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 이 아이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본인 역시 아르바이트를 안 해본 일이 없었으며 봉제공장에서도 일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가수의 길로 갈 것이라고 다짐 또 다짐하며 꿈 현실화 작업에 착수했다.

힘든 미국생활은 20세가 되어서야 끝났다.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활동을 위해, 미국에서 스타가 되기 힘들 것으로 보고 모국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귀국하면 순탄할 것으로 여겼지만, 이 아이에겐 서러운 무명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넌 가수 할 목소리가 아니야' '랩이나 해' 등 꿈을 포기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럴수록 더 노래실력을 갈고 닦았다. 설움 속에 10년 내공을 쌓은 것.

'부가킹즈'라는 힙합그룹 활동도 별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2004년 솔로활동을 시작했고, 30년간 설움을 털어버린 한 곡이 나왔다. 바로 '고래의 꿈'이다. ♬파란 바다 저편 어딘가 사랑을 찾아서 하얀 꼬릴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오 예♬

바로 '바비 킴(Kim)'이라는 힙합 소울 가수의 탄생이었다. 30세가 넘은 그 아이는 우뚝 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랑했나봐 아직 사랑하나봐 오직 너만 사랑하게 태어났나봐♬ '일년을 하루같이'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스타로의 발돋움에 결정적인 노래는 '고래의 꿈' '일년을 하루같이'에 이어 나온 '사랑 그놈'. ♬사랑해 널 사랑해 불러도 대답없는 멜로디 가슴이 멍들고 맘의 눈은 멀어도 다시 또 발길은 그 자리로♬

바비 킴이 대한민국 실력파 가수로 우뚝 선 것. 이제 웬만한 젊은 사람은 거리를 나서도 알아본다. 그리고 10대 아이돌 가수 팬들과 달리 그를 보며 그의 노래를 읊조린다. 그의 노래에 대한 사랑의 자연스런 표시다.

19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인근 포스코 더# 아일랜드 건물 '하롱베이의 하루'라는 베트남 식당에서 '바비 킴'을 만나 그의 음악인생을 들어봤다.

◆'고래의 꿈'이 내 꿈

바비 킴은 아직 배가 고프다. 뭔가 이뤄냈고 뒤늦게 성공이라고 할 만한 가수로서의 성취가 있었지만, 여전히 더 깊고 호소력 짙은 자신만의 음악세계에 대한 노력을 하고 싶어한다.

"경제적으로도 많이 안정되고, 다소 마음의 여유도 생겨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노력을 더 가다듬고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이자 가수가 되고픈 꿈을 가꾸고 있습니다."

바비 킴은 얼마 전 울산 고래축제에서 '고래의 꿈'을 부를 때의 벅찬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장소·노래·사람·꿈 등이 혼연일체가 돼 노래는 가사 그대로 고래를 타고 꿈을 찾아 바다 저편으로 떠났다. 자신뿐 아니라 관객 모두 '물아일체'(物我一體)였던 것.

'사랑 그놈'이라는 타이틀 곡을 내세운 스페셜 앨범도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또 전국 투어 콘서트가 끝나면 3집 앨범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갈 것이다. 바비 킴은 이렇게 말했다. "경제가 정말 빨리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음악인들이 먹고살려면 음반도 많이 사주고 콘서트 요청도 많이 들어와야죠."

'불혹'(40세)이 되기 전에 결혼하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내 아이가 유치원에 갔을 때 '아버지가 할아버지 같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렇잖아요."

바비 킴은 솔로활동을 하는 지난 6년간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연애를 잠시 뒤로 미뤘지만 이제 운명처럼 결혼할 여성을 찾고 싶어했다. 이상적인 배우자는 자신의 일을 이해해주고 한없이 사랑스러운 여자. 굳이 연예인 중에 모범을 찾자면 배우 고소영. 그는 고소영처럼 턱선이 갸름한 여성이 좋다고 귀띔했다.

◆'도균 그놈, 참 참한 놈'

바비 킴의 본명 김도균. '사랑 그놈'처럼 명확히 정의할 수 없지만 참 좋은 놈이라고 스스로 생각해도 그렇단다. "언젠가 이뤄질 꿈을 위해 배포 좋게 굴욕, 무시, 천대 등을 잘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좀 늦은 듯하지만 스스로 당당할 만큼 실력파 가수로 자리 잡았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 시작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마시지 않았던 술을 요즘 들어 부쩍 많이 한다. 한국적인 깊은 정서에 대한 이해 때문. 미국 생활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몰랐다. 한국에서 '소주 한잔'의 의미를. 단순히 알코올이 아니라 속 깊은 얘기로 친밀도를 더해가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대부분 진한 술자리를 통해서라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아버지 피를 이어받아 술 실력은 술고래와 술상어의 중간 수준 정도는 된다고 했다. "술 좋아요. 하지만 술주정이나 필름이 끊길 정도는 절대 마시지 않았습니다."

바비 킴에게 술은 한국에서 더 큰 가수로 크기 위한 하나의 좋은 도구가 된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셈. 조용필이나 나훈아 같은 국민가수가 되고픈 꿈도 있다.

'힙합 소울의 대부'라는 부담스런 별명도 사양했다. 차라리 '랩 할아버지' 같은 친근한 별명을 선호했다. 그는 생활도 검소하다. 미국 이민생활에서의 힘든 생활과 무명시절의 아픔이 있기 때문에 '사치'라는 단어와는 담을 쌓고 산다. 힙합 후배들과는 선술집이나 값싼 일본식 술집 등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후배들에게도 '신인가수 시절에는 밴을 타기보다 차라리 카니발을 타고 다니는 게 낫지 않느냐'고 충고한다.

【다음은 바비 킴과의 시시콜콜 대화】

-다음달 7일 대구 콘서트도 앞두고 있는데.

"네. 지난 3월 대학로에서 소극장 공연을 했는데 그야말로 '대박'이 났어요. 3일 공연 동안 매회 매진을 기록했으며, 예매시작 단 10분 만에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관객도 2천명이 동원돼 대성황을 이뤘지요. 이에 탄력받아 전국 투어 공연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30, 31일은 서울 연세대에서, 다음달 7일은 대구에서 또 부산으로 경기도로 제주도로 두 달여간 전국 투어 공연 대장정에 들어섭니다. 7일날 대구 팬들 많이 와 주세요."

-대학 축제에도 단골 초청가수라는데.

"올해 들어 부쩍 더 대학 축제에 많이 다녔습니다. 대학생들 중에도 제 노래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많이 는 것 같습니다. 21일에도 대구대와 대구공업전문대에 초청가수로 불려가 제 노래를 선사했습니다. 사실 대학생들과 호흡하는 것은 37세 청년 저 바비 킴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입니다. 특히 대구와 인근 경산 등에는 대학이 많아 자주 갔고 앞으로 더 많이 찾아뵙겠습니다."

-소울 가수 윤미래와 친하다는데.

"네. 제가 힘들 때 도움과 위로가 되는 동료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소극장 공연 때 '윤미래가 있었기에 바비 킴이 가능했다. 그녀는 나의 음악적 구세주나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윤미래가 좋지 않은 일로 힘들어 할 때도 제가 술친구가 되어주고 작은 위로가 되려 노력했습니다. 같이 듀엣곡도 불렀는데 지금 들어봐도 괜찮은 곡들이에요. 2001년 윤미래의 1집에 수록된 'It's all right, It's all good' 등."

-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나요. 지금은 아내가 없어 사실 제 정신은 마마에게 가 있죠. 지난 공연에서 이번 앨범에 수록된 '마마'라는 곡을 부르는데 관객석에 어머니가 앉아 있어 도저히 볼 수가 없었어요. 눈물이 터지면 공연을 망칠 것 같아서. 그래서 어머니가 있는 관객석 방향으로는 시선을 피했습니다. 다행히 눈물이 그렁그렁하기만 했을 뿐 흐르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뭐라 말할 수 없잖아요'."

-돈 되는 CM(Commercial Message)송도 많이 불렀다는데.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요. 워낙 유명한 곡이 있어서 그렇지. '사표를 날려라, 내일 아침까지만'(모닝 케어)와 '당신만의 아리따움'(ARIDAUM)이 제가 부른 것이에요. 사실 이후에 다른 CM송 섭외도 많이 들어오는데 생각보다 많이 벌지는 않아요. 한번은 모닝 케어에서 홍보와 보상차원에서 5천병을 줘 관객들에게 1병씩 나눠줬는데 비싼 거(5천원 상당)라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게 그래요."

-공연 징크스가 있나요.

"네. 노래 부르기 1시간 전쯤 아주 진한 커피를 한잔 마셔요. 그러면 머리가 맑고 노래를 부를 때 모든 기억이 선명해요. 이는 반드시 지키는 철칙이죠. 또 제 사랑스런 보조 매니저 이성준씨가 어깨 마사지를 해주는데 피로가 싹 풀리고 너무 기분 좋아진답니다. 징크스는 아니지만 100㎏에 육박하는 고재훈 이사와 이동혁·성준 매니저는 언제 어디서든 제 든든한 버팀목들입니다."

-'뽀뽀뽀'에도 출연했다는데.

"그런 시절도 있었지요. 뽀뽀뽀뿐만 아니라 EBS에서도 아이들에게 영어 가르쳐주는 사람으로 출연해 열심히 방송했습니다. 무명시절 소중한 추억이에요."

-야구도 잘 한다는데.

"미국에서 야구를 좀 했지요. 그래서 지금 연예인 야구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많습니다. 제가 조금 합니다."

-향후 계획은.

"더 큰 스타가 되고 싶어요. 실력도 더 있는."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바비킴은?

1973년생. 1남 1녀 중 막내. 2세 때 미국 이민. 샌프란시스코에서 고교 졸업. 닥터레게 1집 앨범 'One'(1994), 솔로데뷔 1집 앨범 'Holy Bumz Presents'(1998), 제15회 서울가요대상 힙합상(2004),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힙합(2005). 히트곡 '고래의 꿈' '일년을 하루같이' '사랑 그 놈' '마마(MaMa)' 'Only you'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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