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는 결혼풍속도…'축가'도 진화한다

입력 2009-05-23 06:00:00

결혼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결혼식 축가(祝歌)도 식상한 건 질색. 요즘 시대 변화에 따라 주례가 없거나 파티형식으로 결혼을 하기도 한다. 축가라도 수십년 전 스타일대로 할쏘냐. 축가 역시 파격에 파격을 더하고 있다. 신랑이 신부를 위해 직접 축가를 부르는 것은 평범한 것. 퓨전음악을 축가나 축주로 선택하기도 하고, 신랑·신부 친구들의 각종 이벤트로 한바탕 축제의 장을 만들어 낸다. 벨리댄스 공연단이 등장하고, 지인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몰려나와 춤추며 흥겨운 음악을 선사하기도 한다.

어떤 축가는 엄숙한 발라드 곡에서 갑자기 신나는 트로트 곡으로 바꿔 혼주들을 당혹하게 하기도 하고, 나이 드신 하객들을 덩실덩실 춤추게 하기도 한다. 곡이 끝나고 뒤돌면 등판에 '잘살아라'는 문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엄숙하고 조용한 성악이나 사랑을 표현한 잔잔한 발라드는 가라. 신세대 스타일 축가로 결혼식을 치른 세 커플을 통해 축가의 변화상을 들여다본다.

◆축가의 파격

#1. 장세현&김윤영 커플

이들은 지난달 28일 달서구 베르사유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예식은 엄숙한 기독교식으로 시작됐다. 정해진 식순대로 잘 치러졌고 드디어 축가 시간. 신랑이 먼저 신부를 위해 가수 이적의 '다행이야'라는 곡을 선사했고, 이어 신랑 친구가 마이크를 받았다. 처음엔 가수 임창정의 '결혼해줘'를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르더니 갑자기 트로트 곡으로 바꿔 불렀고, 노래가 끝날 무렵 정장상의를 뒤집자 '잘살아라 친구야'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신랑·신부, 하객 모두 유쾌하게 한바탕 웃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 순간 최신 유행곡인 소녀시대 'GEE'의 전주가 흐르며 10대 소녀들의 상큼발랄한 댄스까지 똑같이 모방했다. 그야말로 큰 인기를 모았다. 축가쇼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신랑·신부도 놀라고, 하객들도 웃고, 혼주들은 처음엔 당황했으나 나중엔 같이 박수 치며 호응했다.

#2. 하성목&김은정 커플

지난해 말 대구패션센터에서 결혼한 둘의 결혼식은 토요일 밤 환상적인 축제였다. 축가 순서는 1~4탄까지 준비될 정도로 완벽한 디너쇼 무대로 변했다.

오후 5시에 시작한 결혼식은 오후 8시30분이 넘어서야 끝이 났고, 축가 순서는 하객들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 한마당이 됐다. 성악가가 정식으로 축가를 부르고 나자, 이어 트로트 가수가 등장했다. 분위기는 대반전. 중년의 하객들은 체면도 잊고 무대로 나와 춤을 추기도 했다.

이 정도에서 그칠 리 없었다. 벨리댄스 공연단 등장. 배꼽을 드러내는 복장으로 무희들이 등장하자, 혼주들이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몰랐다. 눈길이 모아졌다. 지켜보는 이들에겐 흥겹고 재밌는 광경이었다.

대학교수인 신부 제자들로 구성된 합창단은 무대에서 다시 한번 분위기를 'UP'시켰다. 하객들을 절정의 분위기로 몰고 갔다.

#3. 조지현&장혜연 커플

3년 전 서울 강남의 한 결혼식장. 축가 순서가 되자 신랑 친구가 단정한 복장으로 유리상자의 '신부에게'란 곡을 불러줬다. 다들 경청하고 있었다. 1절이 끝날 무렵 '앗!' 신랑이 친구의 마이크를 빼앗아 신부 앞으로 다가가더니 더 감미로운 목소리와 따뜻한 눈길로 2절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혼주와 하객들도 반전에 깜짝 놀랐다. 신부는 신랑이 직접 불러주는 노래에 감격에 겨운 눈물을 쏟아냈다. 보는 이들의 마음이 훈훈해지는 장면이었다.

결혼식 축가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식순의 하나에 불과했고 딱딱한 형식에 노래 한곡 곁들이는 정도의 축가가 결혼식의 하이라이트 행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수백만원을 들여가며 유명 가수나 음악가를 섭외해 축가를 맡기기도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도 단골 결혼축가 공연자다. 현대적 감각을 접목한 축하곡 연주는 결혼식의 격을 한층 높여준다. 결혼식장에서 몇십만원에 해주는 관현악 연주 등도 별다른 이벤트가 없는 커플들에겐 자주 이용되는 축주다.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친분으로 서로 축가를 불러주고 또 친한 친구들이 이벤트를 하는 장면이 자주 연출돼 이런 유행이 일반인들로까지 번지는 추세다.

박경애 대구웨딩연합회 회장은 "요즘 커플들은 자신들만의 소중한 추억을 담고 싶어한다"며 "축가 역시 예식의 한 순서가 아닌 모두가 웃고 즐기는 감동이벤트로 만들고자 하는 바람직한 변화상"이라고 설명했다.

◆결혼식도 '형식보다 내용'

'축가'는 결혼식의 한 부분. 축가의 파격은 곧 결혼식의 변화와 직결된다. 정해진 형식은 싫다. 내 상황, 내 처지에 맞도록 설정하고, 하객들을 모시는 것도 실례될 게 없다.

목요일이나 금요일 오후 결혼식, 토요일 저녁 결혼식도 적잖다. 이는 이브닝 파티. 부조금 내고 밥만 먹는 것이 아닌 공연도 보면서 술도 한잔 결들이는 개념이다. 주례가 없거나 또는 주례 대신 양가 부모가 좋은 말을 들려주는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결혼식 사진도 식장에서 촬영해야 할 이유가 없다. 평소 잘 아는 사진전공 후배가 나서고, 동영상도 직접 제작하는 신혼부부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또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커플은 3D 특수영상,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음향 등 한편의 드라마나 다큐영화를 보는 것처럼 극적인 결혼식 연출을 하기도 한다. 야외 정원이나 전통 혼례 등도 개인적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 것.

신혼여행도 색다른 시도를 하는 커플들이 적잖다.

결혼 전부터 등산, 스킨스쿠버 등의 운동으로 데이트를 즐겼던 동갑내기 최진우·정은영 커플은 최근 신혼여행으로 자전거 국토종단을 택했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에 지방에 있는 친척과 친구들이 사는 곳을 표시해 신혼여행 계획을 세웠고, 이들 지점을 돌며 직접 만나 인사하고 결혼 축하를 받았다.

박성민 대구웨딩연합회 수석실장은 "부모들 의견이나 주변의 눈치보다는 당사자들이 일생의 한번뿐인 결혼식에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해진 시대"라며 "'파격'이 아닌 '또다른 형식'이라고 하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다양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포유웨딩' 자료)

1. 사랑의 서약(한동준)

2. 신부에게(유리상자)

3. 웨딩천사(하숲)

4. 사랑의 찬가(유열·서영은)

5. 청혼(이소라)

6. 결혼할까요(씨야)

7. 사랑을 위하여(김종환)

8. 결혼해줘(임창정)

9. 난 행복합니다(이재훈)

10. 웨딩데이(서지영·김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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