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는 행위 가운데서 범우주적 행위가 아닌 것은 없다. 이와 같은 생각에 골똘히 빠져 연구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바닥에 등을 대고 다리를 번쩍 든 채 풍뎅이 한 마리가 벌러덩 누워 있다.
'웬 풍뎅이가 난데없이 이렇게 죽어 있담?'
풍뎅이는 이미 한없이 가벼워져서 하찮은 바람결에도 이리저리 몸뚱이가 흔들거렸고, 실로 무수한 실개미 떼들이 가슴에 숭숭 뚫린 구멍을 따라서 일렬종대로 들락날락거렸다.
'아니 도대체 웬 풍뎅이가 이렇게 난데없이 죽어 있담?'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그것은 결코 난데없는 죽음이 아니었다. 투명 유리창에 머리를 들이박고 필사적으로 푸드덕거리던 며칠 전 어느 날의 풍뎅이 한 마리가 불현듯이 뇌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저께 오후의 일이 아니었나 싶다. 창문이 모두 다 닫혀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정말 느닷없이 풍뎅이 한 마리가 연구실 안을 우왕좌왕에다 천방지축으로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유리창을 향하여 저돌적으로 돌진을 하더니, 으악!, 비명 치며, 툭, 떨어져서, 바닥에다 등을 대고, 다리 서너 개만 꼬, 물… 고‥물…‥거' 리‥ 다'가…. 급기야 '동작 그만'이었다.
"아아 懸解(현해)로다, 오오 열반!"
나는 풍뎅이의 시신을 치우려고 흰 종이 한 장을 그녀의 등 밑에다 밀어넣었다. 그러나 웬걸, 놀랍기도 해라, 풍뎅이는 아직 열반에 든 것이 아니었다. 죽은 듯이 누워 있던 풍뎅이가 돌연 과감하기 짝이 없는 이판사판의 뒤집기 한판을 참으로 맹렬하게 시도했던 것이다.
"푸더더더…더더…더더… 더더더더 더더더덕…."
풍뎅이는 온몸을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리면서 날개를 푸더더더… 더더더덕 거리다가 마침내 가까스로 일어나더니, 또다시 유리창을 향해 힘껏 돌진하여 이마를 들이박고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정말 살고 싶은 모양이구나.'
나는 풍뎅이를 살려줘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창문만 열어주면 저 푸른 하늘로 날아갈 터이므로 뭐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자리에서 막 일어서려 했을 때, 갑자기 전화통이 아주 다급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어느 보험회사 서울 본사에 근무하고 있다는 낭창한 아가씨의 감미롭기 짝이 없는 코맹맹이 목소리가 귓바퀴를 돌며 울려 퍼졌다. 들고 싶어도 아무나 마음대로 들 수도 없는, 만약 안 들면 두고두고 후회할 신상품 보험이 나왔는데, 우수 고객인 나에게 보험에 들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아가씨, 저는 보험 따위에는 관심이 없거든요."
나는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러나 호락호락 나가 떨어질 아가씨가 결코 아니었다.
"관심이 없다고만 하시지 마시고 관심을 좀 가져 보세요오. 그리고 고객니임, '보험 따위'라뇨. 보험이 얼마나 좋은 건데 거기에다 '따위'를 갖다 붙이세요오."
그녀의 코맹맹이 목소리가 내 말의 꼬리를 잡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처음에는 물론 퍼덕이고 있는 풍뎅이의 몸부림에 몸과 마음이 온통 다 쏠렸지만, 결국 나는 서울에 있는 아가씨에게 몸과 마음이 꽁꽁 묶여서 풍뎅이고 뭐고 다 잊어버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금 내 눈 앞에 풍뎅이 한 마리가 벌러덩 죽어 있다. 생뚱한 뚱딴지, 황당한 날벼락이 되겠지만, 어느 보험회사의 서울 본사 아가씨가 바로 범인임이 분명하다. 서울에 앉아서 전화 한통을 걸었을 뿐인데, 그로 인하여 대구에서 살고 있던 풍뎅이 한 마리가 난데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다니, 오늘부터는 아무데나 불쑥 전화를 걸어서도 안 되겠네, 아아!
이종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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