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붙잡는 거리의 예술품 '또 하나의 마케팅'
공사장 가설 울타리는 소음과 분진 등을 막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가림막, 가설 방음벽 등으로도 불린다. 재질은 부직포'비닐'강판 등 다양하다. 최근 대형 공사장에서는 재생플라스틱으로 만든 RPP(Recycling Plastic Panel)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공사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가설 울타리가 도시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가설 울타리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도시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치부되기 일쑤. 하지만 최근 가설 울타리를 아름답게 꾸미는 사례가 늘면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보기 좋게 치장하는 단계를 넘어 예술작품으로 진화하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설 울타리를 어떻게 꾸밀 것인가는 전적으로 시공업체 측의 몫이다. 가설 울타리 단장은 대부분 컴퓨터로 이미지 작업을 한 뒤 출력해서 붙이는 실사로 이루어진다.
이미지로는 명화'풍경'꽃 등 여러 가지가 등장한다. 2004년 효성건설이 대구 수성구 신매동(백년가약 청)과 범어동(백년가약 궁) 아파트 공사현장과 매호동 동양염공 후적지 사업장 가설 울타리에 밀레'레오나르도 다빈치'고흐 등의 복제작품 7점을 내걸면서 대구시내 아파트 공사장 가림막의 혁명이 시작됐다.
최근에는 공공미술(대중들을 위한 미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예술가를 초빙해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광화문 복원 공사현장 가설울타리에 사용된 '광화에 뜬 달'은 강익중 작가가 6개월간 만든 작품이다. 가설 울타리가 훌륭한 공공미술 장소로 활용된 경우다.
◆ 지금 대구는
중구 계산2가 현대백화점 대구점 신축현장 가설 울타리는 지난 3월 단장된 모습을 드러낸 이후 사람들 입에 자주 회자되고 있다. 우선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색(붉은색) 때문에 가설 울타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가설 울타리에 등장하는 시계'화장품'구두'옷 등 다양한 생활잡화 이미지가 간접적으로 백화점 건설현장임을 알리고 있다.
특히 이곳 가설 울타리가 유명세를 탄 이유는 바로 대구 출신으로 역사를 빛낸 인물들의 사진과 간단한 이력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가설 울타리가 화가 이인성, 민족시인 이상화, 작곡가 현제명, 근대 대구를 대표하는 서예가 서동균을 비롯해 이상백 이상정 백기만 현진건 박태준 홍해성 김광제 서병오 등을 만날 수 있는 역사교과서로 변신한 것. 가설 울타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배경에 검은색 이미지가 깔려 있다. 전시된 인물들이 태어난 곳의 지도를 형상화한 것이다.
시공을 맡은 한라건설의 최준석(40) 과장은 "대구의 역사를 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기존 가설 울타리와 차별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공사장 앞을 오가는 사람들은 한번쯤 발길을 멈추고 관찰할 만큼 시민들의 반응도 좋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관심이 높다 보니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민족운동가 서상돈이 빠졌다는 항의성 문의도 들어왔다. 이에 따라 한라건설은 서상돈의 사진과 이력을 추가로 전시하는 한편 '2013년 대구세계에너지총회'를 홍보하는 이미지도 가설 울타리에 넣기로 했다.
롯데건설이 동구 율하택지지구 내 건설 중인 롯데쇼핑프라자 건설현장에서도 아름다운 가설 울타리를 만날 수 있다. 지하철 율하역을 빠져 나오면 곱게 치장된 가설 울타리가 바로 나타난다. 쇼핑프라자 건설현장답게 젊은 여성을 부각시킨 이미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쇼핑하는 젊은여성뿐 아니라 컬러풀 대구 로고와 대구 시화(市花)인 목련, 시목(市木)인 전나무, 시조(市鳥)인 독수리 등의 이미지도 담겨 있다.
동구 입석동 동대구우체국 건설현장 가설 울타리도 시선을 끈다. 벽산건설과 태평양건설이 공사를 맡고 있는 동대구우체국 신축공사는 2007년 6월 시작됐다. 12월 완공 예정으로 신축건물이 거의 제모습을 드러낼 만큼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가설 울타리는 형형색색으로 장식돼 있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색깔은 푸른색 계통. 나무를 형상화한 것 같은 이미지가 많아 멀리서 보면 가설 울타리가 가로수를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 효과 ' 비용
아름다운 가설 울타리는 도시 미관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건설 단계에서부터 신축건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 기업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마케팅 도구로도 한몫을 하고 있으며 훌륭한 광고판 역할도 한다. 동대구우체국 건설현장 가설 울타리 곳곳에는 우체국 예금'보험'택배를 알리는 문구가 넣어져 있다. 광고판 만을 설치한 가설 울타리에 비해 사람들의 시선이 자주 가고 오래 머물기 때문에 광고 효과는 더 높다. 롯데쇼핑프라자 건설현장사무소 이동준(36) 관리 대리는 "기업들이 돈을 들여 가설 울타리를 꾸미는 이유는 공사현장 주변을 다니는 시민들의 불편을 덜어 주는 효과 뿐 아니라 기업과 건물에 대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설 울타리를 꾸미는 데는 일반적으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돈이 든다. 명화를 사용할 경우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작가의 명성에 따라 비용은 억대를 넘어갈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리노베이션 공사장 가설 울타리에는 르네 마그리뜨의 '골콘다'가 사용되었는데 저작권료만 1억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롯데쇼핑프라자 가설 울타리 치장에는 수천만원이 소요됐다. 현대백화점 대구점 가설 울타리 디자인은 작가에게 의뢰해 만든 것이어서 7천만~8천만원 정도의 돈이 들어갔다.
◆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대비
경기가 어려워 한푼이라도 경비를 절감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가설울타리 치장 비용이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소형 건설업체의 경우 가설 울타리를 치장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대구시내를 다녀 보면 천으로 가설 울타리를 쳐 놓은 곳이 있다.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대규모 건설현장 가설 울타리라도 공장에서 나온 형태 그대로 RPP를 설치하거나 기업을 알리는 광고 문구 몇 개만 붙여 놓은 경우도 있다. 가설 울타리를 꾸미는 일은 일부 대형 건설현장에서만 국한돼 있다.
이에 따라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있는 대구시는 간선도로변 도시디자인 정비를 위해 가설 울타리 꾸미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대구시는 최근 도시 이미지에 맞는 디자인으로 가설 울타리를 단장하도록 건설업체에 협조를 구하라는 공문을 각 구청에 보냈다. 현대백화점 대구점 가설 울타리 디자인도 대구시'중구청'한라건설의 협의 하에 결정된 것이다. 당초 한라건설은 명화 또는 시민들에게 활력을 주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디자인 안을 제시했으나 협의과정에서 역사적 인물 전시로 변경됐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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