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탕에 들어가도 과태료 2만원이면 OK?

입력 2009-05-20 09:07:02

여탕에 예고 없이 남자가 불쑥 들어갔다면 어떤 처벌을 받을까? 경찰은 이 남자에게 경범죄를 적용해 2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1일 자정쯤 주부 L씨는 자신이 사는 대구 중구 주상복합아파트의 목욕탕에 들렀다가 봉변을 당했다. 몸을 씻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웬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깜짝 놀란 L씨는 "아저씨가 왜 여기 있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목욕탕에는 L씨 외에도 서너명의 여성이 더 있었다. 여성들은 계속해서 "빨리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목욕탕 안의 전구를 교체하러 왔다는 남자는 "나갑니다. 나가요"라는 말을 되풀이한 뒤 5분가량 할 일을 다하고 탕을 나갔다.

화가 난 L씨는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수건과 대야로 알몸을 가린 채 탕을 뛰쳐나왔다. 황급히 휴대전화를 꺼낸 L씨는 다시 한번 놀랐다. 탈의실에는 다른 남자 한명이 더 있었고 문 손잡이를 고치고 있다고 했다. 112에 신고한 지 10여분 뒤 여경이 도착했고, 이들은 나란히 인근 지구대로 갔다.

하지만 L씨는 경찰의 태도에 또다시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여탕에 들어왔던 남자에게 '왜 들어갔어요? 나중에 이 여성분들에게 공짜로 목욕 한번 시켜주세요. 경범죄로 2만원 스티커 끊겠습니다'라는 말만 하고는 돌려보냈다. L씨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수치심에 대한 처벌이 고작 과태료 2만원이라니 말이 되느냐? 이러면 아무나 핑계를 대고 여탕을 제집 드나들듯 할 거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건을 처리한 지구대 관계자는 "업소와 관련없는 사람이 고의적으로 여탕에 출입했다는 고의성이 입증돼야 형사처벌이 가능하나 이 사건의 경우 여탕에 들어갔던 남자는 목욕탕 관리인인데다 전구를 교체하는 등 고의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경범죄로 처벌했다"고 밝혔다. 목욕탕 측도 "목욕탕 내부에 고칠 일이 있으면 항상 자정쯤 작업을 해왔다. 그동안 카운터 여종업원이 작업 사실을 여탕 손님들에게 알려왔는데 이날은 잠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문제가 일어났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법원의 판단은 어떨까? 대구고법 한재봉 공보판사는 사건의 정황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는 전제 아래 이렇게 법리해석을 했다. "우리나라 형법은 고의성을 대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 사건의 경우 고의성 여부가 불명확해 형사처벌이 힘들 것 같다. 그렇지만 경찰이 적용한 경범죄 처벌은 잘못이다. 여성들이 빨리 나가라고 했지만 즉시 나가지 않은 죄를 물을 경우 형법 319조 2항의 퇴거불응죄(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로 처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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