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유방암 3기 수술한 최필순씨

입력 2009-05-20 09:12:39

"뇌출혈 남편 보살펴야 하는데 유방암이…"

▲ 갑작스레 부부에게 찾아온 병마로 가정형편은 힘들어졌지만 최필순씨 가족은 사랑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갑작스레 부부에게 찾아온 병마로 가정형편은 힘들어졌지만 최필순씨 가족은 사랑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살다 보니 이런 불행이 겹쳐오기도 하네요. 그래도 이겨내면 좋은 날이 있겠죠."

티없이 맑은 얼굴의 최필순(44·여·대구 중구 남산동)씨는 취재 내내 눈물을 찍어 냈다. 딸 둘과 아들 하나의 다섯 식구가 낡은 한옥 집에 사글세를 살고, 남편이 일용직 페인트공으로 일을 하는 가난한 삶이었지만 없이 살아도 마음만은 행복했다던 그다. 부지런히 일하는 남편과 마음씨 착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세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최씨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망가지고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로 전락했다. 70만원의 수급비로 세 아이들 먹이고 입히는 것도 빠듯해졌다. 그는 "왜 이런 불행이 겹쳐오는지 모르겠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최씨의 불행이 시작된 것은 올해 2월 말.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불경기에 한 달에 열흘 남짓 일을 하기도 어려웠던 남편이 설 연휴가 지나고는 닷새 연속 일을 나가면서 "올해는 좋은 일만 있으려나 보다" 내심 위안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침에 일을 하러 나가려고 준비 중이던 남편 이덕수(54)씨가 갑자기 방에서 쓰러진 것이다. 남편은 거품을 물고 식은땀을 흘리고 눈이 한쪽으로 몰리는 등 이상한 증세를 보였다. 응급실을 찾으니 뇌출혈이라며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후 남편은 왼쪽 편마비 증세를 보였다. 40여일가량의 치료 끝에 걷고 일상생활 하는데 큰 불편은 없지만 아직 다리를 조금 전다. 기억력에 약간의 손상이 와 약을 먹는 사소한 일까지 누군가가 옆에서 챙겨줘야 할 형편이 돼버렸다.

그사이 생활비와 남편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최씨는 3월 말 목욕탕을 찾았다가 가슴의 모양이 이상하게 변형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래도 남편을 간호하느라 병원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남편이 퇴원한 4월 중순에야 찾아간 병원에서는 유방암 3기라는 진단을 내놨다. 한쪽 가슴을 완전히 잘라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참담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를 쉽게 받아들기가 힘들었다. 수술비를 마련할 길도 막막했다. 수술비에다 항암치료비, 호르몬치료비까지 족히 천만원은 넘게 든다는 말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13일 수술을 마친 최씨는 "이제 담담하다"며 "아이들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착한 큰딸은 엄마 수술날짜와 겹쳐 학교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결국 최씨의 설득에 여행길에 올랐다.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던 큰딸은 곱게 접은 편지 한 통과 방울토마토를 사들고 병실에 나타났다. 편지에는 "엄마 힘내게 하는 부적"이라며 "같이 있지 못해도 씩씩하게 견뎌내. 엄마 파이팅!"이라고 써 있었다. 최씨는 "수학여행 갈 여비가 없어 큰딸이 휴일에 결혼식장에서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게 만든 것만 해도 가슴이 아리는데, 암을 이겨내는데 방울토마토와 브로콜리를 데쳐먹으면 좋다며 한아름 싸들고 나타났다"며 눈물을 닦았다. 막내 아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병원에 들러 엄마를 응원해주고 있다. 최씨는 내성적이라 말수가 적은 작은딸이 "엄마 아파하는 것 못 보겠다"며 애써 눈을 피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최씨는 연방 옅은 미소를 지었다. 수술 결과가 성공적이고, 남편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다. 최씨는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지 않겠냐"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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