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커민스 지음/송설희·송남주 옮김/말·글빛 펴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주변 사람과) 적대 관계에 놓인다.'
라이벌 관계의 징후는 생후 6개월밖에 안된 유아들에게도 나타나며 형제자매 간에서도 발견된다. 인간은 공통된 목표를 가진 사람과 맞닥뜨리면 경쟁을 시작한다. 하나밖에 없는 깃발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사이는 대체로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라이벌 관계는 대부분 자신과 가까운 몇몇의 삶에만 영향을 끼칠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 군인, 혁명가, 왕…. 그들의 라이벌 관계는 개인의 범주를 넘어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인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들의 라이벌 관계는 다양했다. 그들의 라이벌은 국경 밖의 적일 수도 있고 나라 안의 경쟁자일 수도 있었다. 때로는 동료이거나 한 가문의 사람이 라이벌인 경우도 있었다.
라이벌이 어디에 있든 그들은 대결해야 했고 피비린내는 싸움, 전쟁, 숙청, 혁명을 불러왔다. 어떤 이는 적을 제거하기 위해 기도를 했고, 어떤 이는 음모를 꾸몄다. 또 어떤 이는 선동하거나 여론을 조작했다.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 3세는 서로를 직접 죽이기 위해 수많은 병사들의 피비린내 나는 백병전 사이를 뚫고 달려나가 싸웠다.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쫓아낸 후 그의 가족들까지 하나씩 하나씩 집요하게 죽였다.
라이벌들은 공통된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 외에도 서로 닮은 경우가 많았다. 장개석과 모택동은 거대 중국의 미래를 놓고 다퉜다. 두 사람은 1934년부터 1949년까지 중국 전역에 걸쳐 백병전을 치렀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을 증오했지만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둘 다 시골 출신이며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둘 다 어머니가 골라준 배필과 첫 결혼을 했고, 중국의 개혁가 손문을 숭배했으며 극단적 민족주의자였다. 또 외국과의 강요된 동맹을 불신했으며 강철같은 성격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자기만이 국가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으며 완고하고 무자비하며 야망이 컸다.
20세기 초 멕시코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판초 비야와 에밀리아노 사파타는 많은 점이 달랐지만 여자를 밝히고 결혼에 대해 매우 독특한 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두 사람 모두 법적으로는 한 번만 결혼했지만 여자를 납치해 '거짓 결혼' 혹은 '억지 결혼'을 하고 강간을 일삼았다. 사파타와 비야가 죽고 나자 멕시코 법정은 혁명 지도자들과 결혼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소송과 맞소송으로 가득 찼다.
라이벌로 발전하기 전에는 서로 친했던 사람도 있었다. 케네디는 말 솜씨가 뛰어나고 매력적이며 부자였다. 닉슨은 연설할 때 말을 더듬고 미소짓기보다 찌푸리는 일이 많았으며 캘리포니아 출신의 가난한 소년이었다. 케네디는 바람둥이 기질이 강했지만 닉슨은 공부벌레 스타일이었다.
정치 입문 시절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했다. 소속 정당은 달랐지만 개인적으로는 친했다. 그러나 1960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두 사람은 철저하게 상대를 깎아 내렸다. 닉슨이 선거 기간 중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의 고향을 방문해 자신을 제퍼슨과 비유했다. 이에 케네디는 "제퍼슨은 일식과 월식을 구별할 줄 알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었으며 벌판을 측량할 수 있었고 미뉴에트를 춤출 줄 알았습니다. 자, 그러면 닉슨이 그와 어디가 공통점이 있다는 겁니까?" 케네디는 또 자기 친구에게 "닉슨은 더럽고 거짓말쟁이에다 대단히 위험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TV 토론에서 닉슨은 케네디에게 졌다. 말 잘하고 잘 생긴 케네디와 시종 땀을 뻘뻘 흘리는 닉슨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텔레비전의 위력을 알고 있었던 케네디는 충분히 준비했고, 닉슨은 지방 유세를 다니느라 지치고 힘든 몰골로 카메라 앞에 섰다. 두 사람의 대통령 선거에 처음 도입된 TV 토론 이후 거의 모든 나라에서 TV가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케네디는 대통령이 된 후 쿠바 사태를 승리로 이끌어 세계 역사에 영향을 끼쳤고 저격당함으로써 순교자의 이미지까지 챙겼다. 닉슨은 이후 대통령의 꿈을 이루었지만 '워터게이트'로 불명예 퇴진했다.
직속 상관과 부하 간에 라이벌 관계가 형성된 경우도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의 직속 상관이었지만 그를 함부로 다룰 수 없었다. 공산주의 공포가 서구를 휘몰아치던 시기에 2차 대전의 영웅, 한국전의 영웅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맥아더는 트루먼을 우습게 알았다. 트루먼은 극동에 머무는 맥아더를 만나보고 싶어했지만 맥아더는 늘 거절했다. 대통령 트루먼이 휘하의 장군 맥아더 앞에 쩔쩔맸던 것이다. 화가 난 트루먼이 맥아더를 전격 해임했지만 오히려 맥아더가 영웅이 됐다.
이 책 '라이벌의 역사'는 인류 5천년 역사에서 세계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23쌍의 라이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다리우스 3세의 대결은 페르시아 제국의 소멸과 헬레니즘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스웨덴 왕 카를 2세와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대결을 계기로 러시아는 강국으로 부상했다. 엘리자베스 1세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대결은 영국 번영의 시작이 됐다. 리처드 1세와 존왕의 대결로 봉건주의가 무너졌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로 로마 제국이 시작됐고,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대결로 로마의 세계 쟁패가 확정됐다. 헨리 2세와 토마스 베켓의 대결은 종교가 정치와의 싸움에서 승리했음을 보여주었고, 필리프 4세와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대결은 정치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책은 라이벌들의 관계, 대결의 초점, 과정, 결과, 승자와 패자, 그들의 대결이 역사에 미친 영향 등을 담고 있다. 많이 알려진 사실도 있고 우리가 자세히 알지 못했던 에피소드도 있다. 23개의 이야기는 그들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도 객관적 사실과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인류의 역사도 함께 읽을 수 있다. 494쪽, 2만4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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