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파이스토스 원판

입력 2009-05-19 10:49:56

파이스토스 원판은 기술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에게 골칫거리 유물로 통한다. 이 원형 점토판은 1908년 그리스 크레타섬 파이스토스에서 고대 미노스 궁전을 발굴하던 중 나왔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물의 연대를 기원전 1700년대로 추정했다. 구운 점토판 양면에 모두 241개의 이상한 문자와 기호가 담겨 있는데 손으로 새긴 것이 아니라 무른 점토 위에 양각한 도장을 하나하나 찍어 만든 것이다. 추정컨대 세계 최초의 인쇄물이다.

발굴된 지 벌써 100년이 지났지만 아직 문자와 기호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없다. 그 어디서도 비슷한 문자와 기호가 발견된 적이 없을 만큼 특이하고 종잡을 수 없어 학자들을 당혹하게 하고 있다. 진화생물학, 인류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저서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에서 이 원판에 대해 "인쇄를 하려는 인류의 노력을 보여준 유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기술상의 단점과 동기'수요 등 조건이 맞지 않아 기술의 확산에 실패하면서 사장되고 말았다는 평가도 내렸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발명과 기술의 역사에 있어 개인의 창의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혁신에 대한 사회 전체의 수용성이라고 말한다. 발명은 혁신성과 혁신에 대한 수용성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발명은 우리의 통념을 허무는 경우가 많다. 흔히 필요가 발명을 이끌어 낸다고 하지만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일 때가 더 많다고 다이아몬드 교수는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발명품은 호기심이 강한, 이것저것 주물러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결과물'이다. 즉 발명가들은 대중의 수요도 없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한 가지에 매달리는 사람들인 것이다. 만들어진 것은 사람들이 상당 기간 사용한 후 마침내 필요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본래 'invention'이라는 영어 단어는 고어에서는 '발견'의 뜻이었다. 나중에 '발명'으로 굳어진 것은 우연성보다는 '필요한 그 무엇' 즉 發明(발명)의 행위에 내포된 역사적, 문화사적 의미에 더 비중을 둔 때문은 아닐까.

오늘은 '발명의 날'이다. 기술이 생존을 좌우하는 오늘날 우리는 발명이라는 큰 인류사적 흐름에 뒤처진 것은 아닌지, 기술과 그 축적을 통한 진보를 등한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봐야 한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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