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조 들여다보기] 있으렴 부디 갈따 / 성종

입력 2009-05-16 06:00:00

있으렴 부디 갈따

성종

있으렴 부디 갈따 아니 가든 못할소냐

무단히 싫더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려도 하 애도래라 가는 뜻을 일러라.

고려 말에 형식이 정제되어 조선을 풍미한 시조는 유교 이념인 충(忠)과 효(孝)의 구현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따라서 시조는 충과 효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특히 충에 대한 작품이 많다. 그런데 임금이 신하를 위해 노래한 것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이 작품은 조선 9대 임금 성종(成宗·1457~1494)의 작품으로 시조의 주제적 특이성을 갖는다.

'떠나지 말고 내 곁에 있거라, 기어이 가려고 하느냐. 아니 가지는 못하겠느냐/ 그대는 내가 괜히 싫어져서 가려고 하는가. 아니면 남의 말을 듣고서 가려고 하는 것인가/ 그래도 몹시 애가 타는구나 가야 한다면 가는 뜻이나마 속 시원히 말해 보게나.'

성종은 예종(睿宗)이 재위 1년 만에 승하하자 후사가 없어 걱정하던 차에, 세조비 정희왕후(正憙王后) 윤씨가 성종의 슬기로움을 사랑하여, 불과 13세의 어린 나이로 대통을 잇게 하여 왕이 되었다. 1469년 왕위에 올라 25년간 '악학궤범' '여지승람' '동국통감' '동문선' '두시언해' 등을 편찬하고, '경국대전' 반포와 함께 존경각(尊經閣)·향현고(香賢庫)·홍문관(弘文館) 설치 등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선대에 이룩한 문화를 계승 발전시켰다.

성종은 신하를 사랑하고 아꼈는데, '여지승람' 편찬에 관여한 유호인(兪好仁)도 성종이 총애한 신하 중 한 사람이었다. 유호인이 노모를 모시기 위해 고향인 선산(善山)으로 돌아가겠다고 왕께 청했다. 그때 성종은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유호인이 뜻을 굽히지 않아 친히 술잔을 들어 권하며 이 노래를 읊었다고 한다. 임금과 신하 사이가 아니라 부모가 아들에게, 혹은 친구끼리 나누는 말처럼 정이 담겼다.

임금이 신하를 위해 읊은 작품으로는 위 작품과 함께 선조(宣祖·1552~1608)가 노신(盧愼)이 벼슬을 마다하고 돌아갈 때 읊은 것이 있다. '오면 가랴 하고 가면 아니오네/ 오노라 가노라니 볼 날이 전혀 없네/ 오늘도 가노라 하니 그를 슬허 하노라.' 라고….

두 작품 모두 신하를 아끼는 임금의 간절한 마음이 묻어난다. 그 간절함은 시대를 뛰어 넘어 군신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리(情理)를 새삼 느끼게 한다. 노래가 되어 남은 아름답고 귀한 내리사랑이여….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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