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막내, 36세 맏형에 "막아!"…축구 선수들의 '그라운드 화법'

입력 2009-05-13 08:22:53

발과 몸만으로 축구 경기가 완벽해지지는 않는다. 말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문전 프리킥 때 수비수들의 방어막 뒤편에서 골키퍼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광경은 흔하다.

선수들은 경기 도중 동료들과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한다. 심판들은 위험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에게 구두 경고도 자주 한다.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모습도 재미있는 볼거리다.

때로는 욕도 등장한다. 최근 중국 리그에서 활약중인 안정환은 그를 자극하기 위해 한국 욕을 배운 상대 중국 선수로부터 '개XX'라는 욕을 끊임없이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 결정적인 기회를 날리거나 페널티 킥을 실축할 때에도 선수들은 "에이, 씨"라며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자책하는 모습을 종종 비친다. 경기 중 상대팀 선수들과는 되도록 말을 하지 않는다. 경기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수고했다"는 등의 의례적인 말만 오갈 뿐이다. 승패의 여진이 경기가 끝난 후에도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남기기 때문이다.

경기 중 동료 선수들끼리는 반말을 한다. 프로 10년차 선수와 신인 선수들은 그라운드 밖에서는 '형', '동생'이지만 일단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승리를 위한 전사가 된다. 전사들에게 예의는 둘째다. 승리가 우선이다. 대구FC에서 가장 나이 많은 조준호(36)와 막내 김민균(21)은 15년의 차다. 그러나 그라운드에서는 서로 "준호", "민균"으로 부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국가대표 감독이 그라운드에서 존칭을 생략할 것을 지시한 후 등장한 풍경이다.

대구FC에서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선수는 골키퍼 조준호. 상대가 역습으로 나올 때는 동료 수비수들에게 "막아", "끊어", "붙어"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말을 사용한다. 몸도 분주하지만 입도 그에 못지않게 바쁘다.

투지가 가장 좋은 선수는 중앙 수비수 방대종. 수세에 몰릴 조짐이 나타나면 수비수들은 진땀이 난다. 방대종은 상대가 측면 공격으로 나올 때 측면 수비수들에게 "쫓아가", "달려가" 등 코치(?) 역할까지 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격할 때도 방대종의 입은 쉬지 않는다. "빨리 쫓아가", "오른쪽으로 공격해" 등등.

미드필더 이슬기는 "개인적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며 "주로 '파이팅 하자', '더 뛰자'며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변병주 대구FC 감독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끼리 말을 많이 하도록 당부한다.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의사소통은 감독의 지시만큼이나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심판들의 말도 빼놓을 수 없다. 심판들은 경어를 사용하지만 선수들에게 그다지 유쾌한 내용은 아니다. 다소 위험한 플레이를 하거나 매너 없는 플레이를 할 경우 "조심하세요", "1차 경고입니다" 등의 말로 구두 경고를 한다. 그럼에도 이같은 플레이가 계속될 경우 지체 없이 노란색 또는 빨간색 플라스틱 카드를 빼든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