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고 장영희 교수가 지상(地上)에서의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며 꼬박 사흘 밤낮을 들여서 쓴 꼭 100자짜리 짤막한 '편지'가 2009년 5월 이땅의 대한민국의 아들 딸들에게 '엄마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따로 떨어져 살거나 혹은 함께 살아도 늘 마음과는 달리 곰살맞게 사랑을 표현하지도, 큰 관심을 쏟아붓지도 못하던 많은 자녀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희생적인 모정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엄마 신드롬'은 마음 한구석에 짠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당장 눈앞의 일들에 몰려서, 혹은 새삼 돌봐드리지 않아도 언제나 그자리 그곳에 머물러 계실 것이라고 미뤄버리는 아들 딸들의 '무딘 효심'을 흔들고 있다.
8년 동안 병마와 싸우면서도 단 한번도 절망하거나 포기한 적이 없이 씩씩하게 하늘나라로 간 고 장영희 교수가 지상에 남긴 단 한마디 '엄마'. 넉 줄 남짓 어머니에게 쓴 100자 짜리 '마지막 편지'가 '엄마 신드롬'과 함께 우리 사회를 감동의 물결로 출렁이게 하고 있다.
"엄마, 미안하다"며 애틋한 이별을 고한 딸은 환한 미소를 남겼지만 팔순 노모는 눈물로 딸을 보낸 심정을 표현했다. 중증 장애를 가진 어린 딸을 업어서 학교에 보내고, 2시간 마다 학교에 들러서 화장실을 데려가고, 그래서 비장애인들도 갖기 어려운 따뜻한 감성과 인간미 넘치는 지성을 동시에 지녔던 고 장영희 교수의 사모곡이 문화계 전반에 '엄마 신드롬'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강부자가 희생적인 어머니를 연기하는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 이미 스테디셀러가 된 소설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연극인 손숙의 '어머니'가 불황 속에서도 이례적으로 매출과 매진 기록을 내고 있다. 아들의 살인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면 이땅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처절한 사투를 마다하지 않은 어머니역할 한 김혜자 원빈 주연의 봉준호 표 영화 '마더'는 개봉 전부터 관심이 폭주하고 있다. 약재상에서 일하고 몰래 침을 놓으면서 남편없이 아들(원빈 분)과 단둘이 살아온 엄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도준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리게 되고, 경찰은 물론 변호사 조차 그를 외면하자 아들을 구하기 위해 홀로 범인을 찾아나선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마더'(Murder, 살인사건)는 엄마라는 식상하리만치 평범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오히려 새로운 영화이고, 불구덩이를 향해서도 멈추지않는 모성의 본질을 다룬다.
"70대 엄마가 실종되면서 엄마의 진짜 모습을 더듬어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엄마에 대해서 다시한번 회상하게 됐어요. 왜 난 엄마를 그렇게 무심하게 대했을까? 왜 그렇게 가까지 지내지 못했을까하는 후회도 들구요."
곽선자(대구시 달서구 송현동)씨가 읽고서 엄마를 다시 생각하게 된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밀리언 셀러를 향해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몽실언니의 권정생씨가 지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 또한 '어무이'였고, 칸영화제에 초청된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서 식물인간이 된 채 오로지 움직일 수 있는 눈빛과 손끝 움직임 만으로 아들이 살해된 것을 밝혀내는 것도 어머니(김해숙 분)였다.
"장애와 암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장영희 교수가 어머니의 희생과 보살핌으로 '57년 인생마라톤'에서 희망의 월계관을 차지한 것처럼, 저도 어머니의 끝없는 희생과 돌봄으로 이렇게 인터넷에서 사업까지 할 수 있었다."는 한 장애인은 영화 '마더'를 개봉일날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다양한 모습을 서로 다른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대부분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모성애가 입신과 출세 그리고 물질에 찌든 현대인들의 마음으로 해독하고 있습니다."
김정숙 영남대 교수는 "심각한 경기불황과 과도한 경쟁으로 힘든 현실을 따뜻한 모성애로 위로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면서 '엄마 신드롬'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미화 기자 magohalm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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