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하나 틉시다" 증권사 객장 북적

입력 2009-05-11 08:20:07

"증권 계좌 하나 틀려고요. 어떻게 하면 되죠?"

"전에 쓰던 계좌를 다시 살려주세요. 아이디랑 비밀번호가 잘 기억이 안나요."

증시 전광판이 최근 빨간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계좌 붐'이 일어나고 있다. 죽을 쑨 펀드 대신 아예 직접 주식 투자에 나서려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경북지역 각 증권사 지점마다 신규 계좌 개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물론, 장롱속에 들어있던 계좌들도 햇볕을 다시 보고 있다.

특히 연 3%대로 내려앉은 예금 이자율 탓에 갈 곳 없는 돈이 속출, 개인들은 고수익을 쫓아 앞다퉈 증시로 향하고 있다.

◆주식 계좌 틀어주세요

중산층이 많이 사는 대구 달서구 상인네거리 일대 아파트촌. 이 아파트촌 중심 상업지구에 위치한 증권사들에는 요즘 "계좌 틀어주세요"라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주식시장이 전인미답의 2,000 고지를 밟았던 2007년 대폭발 증시에서도 직접투자를 하지 않았던 '새 얼굴'까지 눈에 띈다는 것이 이 동네 증권사 사람들의 얘기다.

"요즘 신규 계좌 개설만 하루 5건이 넘습니다. 전에 쓰던 계좌를 다시 살려야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물론 많죠.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초저금리 시대가 닥치자 노년층까지 주식 계좌를 틀어야겠다고 찾아옵니다. 펀드에 물린 사람들이 많아 간접투자에는 관심이 없고 직접투자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춘섭 한국투자증권 대구상인지점장)

펀드 등 간접투자가 시들해졌다는 이 지점장의 말처럼 국내 주식형펀드 자금은 지난달 9천억원 규모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3월 1조5천억원의 순유입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

"어떤 종목이 유망하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지요. 객장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투자설명회도 자주 열고 있는데 그 때마다 만원입니다. 직접 투자에 대한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심대섭 삼성증권 대구상인지점장)

계좌를 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역내 투자자들의 증시 거래도 크게 활성화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대구사무소에 따르면 대구경북지역 투자자의 지난달 거래대금은 약 9조3천935억원으로 3월(약 5조1천370억원)에 비해 82.86%의 증가세를 나타냈다. 지역민들의 주식투자가 급증한 것이다.

◆계좌 얼마만큼 늘었길래?

금융투자협회 집계 결과, 국내 60개 증권사의 위탁매매 활동 계좌수는 지난해말 1천199만개에서 올 1월 말 1천208만개, 2월말 1천217만개, 3월말 1천223만개로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달말에는 1천468만개까지 올라갔다. 올들어서만 269만계좌나 늘었다. 하루 평균 3만2천개가 증가한 셈. 증가율로 따지면 22.4%다.

증권사의 휴면고객수도 꾸준히 줄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의 경우, 6개월간 약정금액이 100만원 미만인 휴면고객수는 1월 3만7천000명에서 2월 3만4천명, 3월 2만6천명, 4월 1만8천명으로 떨어졌다. 활동계좌수가 증가하고 휴면고객수가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투자자들과 자금이 증시에 유입됐다는 의미다.

개인투자자들의 주식투자 예비자금인 고객예탁금은 지난해말 9조2천400억원에서 지난달 29일 14조7천438억원으로 급증하더니 5월 첫주에는 15조775억원까지 올라갔다. 3월말보다 2조1천353억원 늘어난 것. 고객예탁금은 지난달 한 때 16조원까지 올라가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주식 등을 담보로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융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말 1조5천60억원이었던 신용융자잔액은 2월말 1조9천356억원, 3월말 2조2천341억원에 이어 지난달 29일 기준으로 3조4천90억원까지 불어났다.

◆독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무작정 달려가는 것은 금물"이라는 충고를 내놓고 있다.

김현기 굿모닝신한증권 대구지점장은 "지수 급등에 따른 경계심을 갖고 일정부분 현금화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주가를 끌어올릴만한 호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모간스탠리(Morgan Stanley) 박찬익 전무도 이달초 보고서를 통해 지금의 증시 랠리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현재 주가 가치가 너무 높은데다 투자자들이 올해 남은 기간 기업실적 전망을 너무 낙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증시 랠리는 하락장 속에서 나타나는 '베어마켓 랠리'"라는 평가를 고수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 위탁매매 활동계좌란?=예탁자산이 전혀 없는 폐쇄계좌나 예탁자산 합계가 10만원 이하이면서 최근 6개월간 거래가 없던 휴면계좌를 제외한 계좌.

▨ 베어마켓 랠리란?=하락장에서 잠시 반짝 상승할 때의 주식 매매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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