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오후 11시쯤 승용차를 몰고 대구 달서구 두류동의 한 골목길을 지나던 A(49)씨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좁고 어두운 길을 지나다 무언가 스치는 듯 한 기미를 느꼈지만 그냥 지나쳤던 게 화근이었다. 행인(31)이 A씨 차량의 사이드미러에 팔을 다쳤다며 A씨를 뺑소니로 신고했던 것. 더 기막혔던 건 그 이후였다. 경찰 조사에서 처음엔 '팔꿈치가 아프다'고 했던 행인은 이후 허리를 삐었고 가슴에도 상처를 입었다며 전치 3주 진단서를 내밀었다. A씨는 "살짝 스쳤을 뿐인데 전치 3주 진단서를 끊어 와서 깜짝 놀랐다"면서 "정말 너무하는 것 같다"며 울상을 지었다.
#지난달 17일 새벽 1시쯤 달구벌대로에서 차선 변경을 하던 승합차와 접촉사고가 난 택시기사 B(55)씨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택시 운전석 앞 부분이 조금 찌그러졌지만 진단서를 끊어 인적 피해로 신고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B씨는 목과 허리를 삐었다며 전치 3주 진단을 받아냈고, 보험금 수령을 기다리고 있다. B씨는 "택시 운행을 해서 버는 돈보다 진단서를 내고 받는 보험금이 더 많은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털어놨다.
불황에다 각박한 세태가 맞물리면서 경미한 사고도 신고부터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크게 다치지 않아도 전치 2, 3주의 진단서를 쉽게 발급받을 수 있는데다 일단 진단서가 나오면 손해배상금과 병원비, 위자료 등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염좌 등으로 전치 2, 3주의 진단이 나올 경우 위자료는 25만원, 병원비는 통원 치료를 할 경우 1회에 8천원씩 지급된다. 물론 그 부담은 가해자의 보험비로 넘어간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피해자가 멀쩡한데도 근육통 같은 증상만 호소해도 보험금을 지급하는 수밖에 없다"며 "운전에 조심하는 방법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했다.
최근 달서구 이곡동에서 추돌 사고를 당한 L(46)씨도 경찰에 신고하고 진단서부터 챙겼다. 차량은 큰 손상이 없었지만 다쳤다고 신고하면 보험금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L씨는 '경추부 및 요배부 염좌'라는 전치 2주 진단을 받았고 보험금 30만원을 받았다. L씨는 "예전 같으면 차량 수리만 맡기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요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생각에 진단서를 끊었다"며 "진단서 끊고 경찰 조사를 받는 게 번거롭지만 한 푼이 아쉬운 마당이라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경미한 사고도 신고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교통사고 처리 건수도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 처리 건수는 2만5천929건으로, 2007년 2만3천637건에 비해 8.9% 늘었다. 증가세는 올 들어 더욱 두드러진다. 올 1~3월 동안 경찰이 처리한 교통사고는 6천37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천789건에 비해 9.2%나 늘어났다. 특히 물적피해 신고가 2천762건에서 3천209건으로 14%나 증가해 대형 인명사고보다는 접촉사고 등 경미한 사고가 늘어났다. 경찰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그냥 사과하고 끝날 사고도 보험금을 탈 수 있다는 계산에 진단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이런 경향이 심해졌지만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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