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만성 신부전증 투병 정돌방씨

입력 2009-05-06 09:05:48

만성 신부전증으로 2004년부터 투병 중인 정돌방(36·경주 현곡면 소현1리)씨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아파트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임필분(78) 할머니.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이 힘에 부치지만 그래도 막내 아들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만성 신부전증으로 2004년부터 투병 중인 정돌방(36·경주 현곡면 소현1리)씨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아파트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임필분(78) 할머니.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이 힘에 부치지만 그래도 막내 아들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어머니 전(前) 상서(上書)

어머니, 저 막내 아들 돌방입니다. 며칠 있으면 어버이날이 돌아오네요. 저는 또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정도로 죄스러운 마음만 가득해집니다.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 신부전증이란 병으로 제대로 밥벌이조차 못하는 이 아들은 고맙고 죄송한 마음을 편지로나마 대신하려 합니다.

평생을 허리 한 번 펼 시간 없이 일하느라 고생만 하신 어머니. 하루 종일 아파트 청소일을 하고 지친 몸으로 힘겨운 걸음을 옮기는 어머니를 볼 때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올해로 78세. 이제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게 모셔도 시원찮을 마당에 자식은 병으로 자리보전만 하고 있고, 여든을 바라보는 어머니께서 아파트 청소부로 일을 하시게 만들다니요.

다친 허리를 억지로 버티며 무거운 밀대질을 해야 하고, 관절염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다리로 쭈그리고 앉아 계단을 닦고, 고혈압으로 가슴이 아픈데도 쉬기는커녕 썩은 내 진동하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씻으셔야 하지요. 이 모든 어머니의 고생이 다 막내 아들인 제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한 것임을 왜 모르겠습니까. 가끔 아파트까지 어머니를 모셔드리고 난 뒤 일하시는 모습이라도 잠시 바라보고 있을라치면 주책스레 눈물이 꾸역꾸역 밀려 나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자식짐'이라고 하지만 자식이 뭐라고 어머니께서 이렇게까지 힘든 인생을 사셔야 하는 건지…. 그래도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게 배려해 준 아파트 분들이 고맙지 않으냐"며 하루라도 일을 거르지 않는 어머니입니다.

제가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만성신부전증만 오지 않았어도 이렇게 불효막심한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텐데, 저 역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10년 전 신부전증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저희 가족 불행은 그걸로 끝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일을 해 번 돈으로 어머니 모시고 아버지 병원비 마련하느라 생긴 빚도 다 갚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을 하던 제가 주류도매업체 배달일로 자리를 옮겼던 것도 빨리 돈 벌어 어머니 편히 모시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아버지에 이어 신부전증에 걸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중학교 무렵부터 소아 당뇨를 앓아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제가 2004년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만성 신부전증이라는 병을 얻은 것이지요. 이후 세번의 투석관 삽입술에 빚만 늘어났고, 증세는 점점 더 나빠져 지금은 이틀에 한번씩 혈액 투석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당뇨 합병증으로 종종 눈 혈관이 터져 안과 진료도 받아야 하고, 한번씩 증세가 심해져 토하기라도 하면 곧장 병원에 입원도 해야 합니다. 정부 지원을 받는 투석비를 제외하고도 한달 약값만 30만~40만원. 연로하신 어머니가 감당하기엔 큰 돈입니다. 아버지 병원비 감당하느라 빠듯한 살림을 쪼개 도움을 줬던 네 분의 누님들 역시 건강과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 보니 막내 아들 간호는 고스란히 어머니 몫이 돼 버렸습니다.

거의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내야 하는 저는 방바닥이 마치 바늘방석 같습니다. 4시간이 걸리는 혈액 투석을 받고 돌아오는 날이면 온몸에 진이 빠지고 어지럼증이 심해 걷기조차 힘들어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누워 있어도 마음은 천근만근입니다. 이런 생활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돼야 하는 걸까요. 신장 이식 수술이라도 받아 단 몇 년 만이라도 어머니를 다른 부모님처럼 편안하게 모시고 싶은데 수술비를 마련할 길조차 막막한 제 처지가 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고맙고 불쌍한 내 어머니. 당신께 지은 불효를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는 날이 오길 오늘도 고대해 봅니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 정돌방 올림.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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