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적십자병원 옆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서면 아담한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순수 무료병원인 '성심복지의원'. 건강보험도 청구하지 않고 환자에게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벌써 17년째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무료 의원인 성심복지의원의 역사는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성심이비인후과의원 원장이던 고(故) 김영민 박사가 병원 건물 전체를 대구천주교유지재단에 기증하면서 무료 의원이 시작됐고, 이후 성루까의원 원장이던 고(故) 임학권 박사가 현재 건물을 기증하면서 2001년 12월 이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치과와 한방으로 시작했던 진료 과목은 내과, 신경과, 피부과, 안과 등 8개 과목으로 늘어났다. 한달 평균 1천명의 환자가 찾고 있으며, 지난해 1만2천400여명이 진료를 받았다.
건물만 있다고 해서 의원이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이 있어야 하고 약품도 필요하다. 병원 살림을 꾸려가고 일일이 청소하고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모든 것들이 자원 봉사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한방 진료가 있는 일요일 오전에는 120여명이 찾아올 만큼 북적대지만 이곳의 상근 직원은 홍명선 사무장과 장혜숙씨, 단 2명 뿐이다. 나머지 운영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이뤄진다. 의사만 59명이 참여하고 있고, 약사와 간호사, 치위생사 등 의료진과 일반 봉사자까지 합쳐 300여명이 바로 성심복지의원의 주인공들이다. 10세 어린이부터 83세 노인까지 남을 돕겠다며 나서고 있다. 누가 나오라고 하지 않아도 봉사할 시간이 되면 출근하고 일을 마치면 알아서 퇴근한다. 마치 물이 흐르듯이 결코 소란스럽거나 떠들썩하지 않게 모든 일들이 차분하게 이뤄진다.
의료진들이 대학병원 교수나 개원의들이다 보니 진료 시간을 짜기도 쉽잖다. 하지만 진료 과목별로 팀을 만들어 요일에 따라 치과, 피부과, 신경과, 한방 등의 진료를 한다. 의원을 방문하기 전에 미리 전화를 걸어 진료 시간 및 과목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거동이 불편해 의원까지 나오지 못하는 노인들을 위해 방문 진료 서비스도 제공한다. 의료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주로 찾아오는 환자는 저소득층 노인들. 때문에 끼니를 거르는 경우도 많다. 급식소에서 점심은 해결하지만 아침, 저녁은 라면이나 빵 한 조각으로 떼우기가 다반사. 그런 상황에서 약을 한 움큼씩 먹다 보니 오히려 건강이 나빠지는 일도 벌어졌다. 보다 못한 성심복지의원측은 결식 노인을 위해 음식도 제공하고 있다. 현재 대구시, 중구기초푸드뱅크 지원을 받아 빵과 음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남산성당 상아탑회원의 도움으로 우유를 구입해 노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매월 첫째주 일요일에는 의원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150여명의 노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한다. 매월 두차례 외부 식당(한티불낙, 오리마을)과 연계해 어려운 노인들에게 별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자원봉사와 후원을 통해 이뤄진다. 연간 약값만 6천700만원. 그 중 4천700만원은 제약업체의 후원으로 충당되지만 나머지는 개인 및 단체 후원금으로 지불한다. 홍명선 사무장은 "단 한 번도 살림이 넉넉한 적이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버텨가고 있다 보니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원이 많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프냐는 물음에 홍 사무장은 "밀린 약값을 갚아야 한다"고 웃어 보였다. 제약업체들이 성심복지의원의 뜻에 공감해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밀린 약값은 갚아야 되지 않겠냐는 것. 매년 나가던 농어촌 의료 봉사도 올해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살림이 빠듯하기 때문. 하지만 의료 서비스가 소홀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홍 사무장은 힘주어 말했다. 이들처럼 '아픔을 나누는 행복한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되고 있다. 053)256-9494. 후원계좌=대구은행 069-10-003259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이사장 최영수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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