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라 내라 하니
무명씨
내라 내라 하니, 내라 하니 내 뉘런고
내 내면 낸 줄을 내 모르랴
내라서 낸 줄을 내 모르니 낸동만동 하여라.
부처님오신날이다. 성인의 탄생을 기리는 까닭은 중생들이 '큰 삶'과 '바른 삶'에 대한 가르침을 새기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옛시조는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편 조선시대에 성행, 불교에 관한 작품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불교적 교리를 담은 시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명씨의 이 작품이 한 예가 될 것이다.
옛시조는 주로 사대부의 자손이나 한학자들에 의해 창작되었고, 그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졌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가 작자를 알 수 없는 작품이 나오게 만들었다. 따라서 무명씨 작품은 양반문학이 갖는 내용을 거부하는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면이 강하다.
이 시조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의문과 '내'라는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나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형식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는데 중장에서 '내'라는 한 글자가 한 음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읽을 때 '내라/ 내라 하니/ 내라 하니 / 내 뉘런고// 내 내면/ 낸 줄을 / 내 / 모르랴// 내라서/ 낸 줄을 내 모르니/ 낸동만동/ 하여라'로 읽으면 문제되지 않는다.
'내'가 아홉 번이나 나오고 '낸'이 세 번이나 나와 언어유희 같은 느낌도 주지만, 소리 내어 몇 번 읽어보면 단순한 시어들 속에 내재한 자아발견의 고뇌가 읽는 사람들에게 '나는 정말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팔공산 동화사와 해운정사 조실인 진제 스님은 석탄절을 맞아 중생들에게 '백화쟁발위수계, 자고제처백화향'(숱한 꽃들이 피는 것은 누구를 위함인가. 자고새 우는 곳에 온통 꽃들의 향기라네)이라며 '부처님 오신 날에 꽃들을 구경하는 그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십시오'라고 당부한다.
꽃을 바라보는 그 마음으로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어보고,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되새겨본다면, 중생이 가야 할 길에도 희미한 선(線) 하나 그을 수 있지 않을까.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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