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뜻했던 동심세계로 잠시 빠져보세요"
'곱단이'는 해자네 강아지다. 해자가 사탕을 빨고 있으면 졸졸 따라다닌다. 토라졌다가도 한 입 주면 와락 안긴다. 해자가 책가방 메고 집을 나서면 저도 데려가라며 조른다. 떼를 쓰다 안 되면 먹던 뼈다귀를 메고 앞장선다. 신발을 물어다 숨겨놓고 해자와 숨바꼭질하기를 좋아한다. 아궁이에 숨어 킥킥대다 불이라도 지피는 날에는 깜짝 놀라 달아나기 일쑤지만.
대구 봉산문화회관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창작 손인형극 '곱단이'는 관객들을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데려가는 놀라운 재주를 발휘한다. '가슴 따뜻하다'는 수식어가 거북해져 버린 시대에 살고 있지만,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곱단이와 주인 해자가 벌이는 알콩달콩한 동심에 빠져들다 보면 나도 따라 마구 착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옹기종기 앉은 장독대와 시커먼 아궁이, 싸릿대로 엮은 담, 꽃이 흐드러진 마당의 나무는 정겨운 고향집의 모습이다.
'곱단이'는 요즘 보기 드문 손인형극이다. 오직 사람의 손과 조명, 음악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대사가 없고, 표정 연기도 없다. 한지와 헝겊으로 만든 30cm 크기의 인형들이 펼치는 연기는 그래서 더 놀랍다. 웃고, 놀라고, 보듬고, 달아나는 연기는 모두 손에서 이뤄진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은 인형 팔에 끼우고, 검지는 인형 머리에 끼웁니다. 관객들이 '표현이 진짜 같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하세요." 작품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극단 대표 서해자(41·여)씨가 직접 헝겊으로 깁고 한지를 붙여 만든 수제품. 묻은 때만큼이나 정이 많이 들었다. 어떨 때는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곱단이'는 인형 극단 '누렁소'가 만든 1인극이다. 등장 인물은 곱단이와 해자, 할머니, 수의사, 도둑 등 4명과 개 한 마리씩이나 되지만 이 인형들을 양손에 끼고 연기하는 사람은 서씨 한 사람이다."저 혼자 이 인형들을 다 움직인다는 걸 알면 다들 까무러쳐요." 손인형극은 고되다. 인형은 쉬어도 서씨는 쉴 수가 없다. 몸살도 손에 먼저 온다. 무대 뒤는 분주하기 짝이없다. 2, 3초 안에 인형을 바꿔 끼우고, 소품도 올렸다 내려야 한다. 그런 서씨를 무대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이가 남편 우현(51)씨다. 우씨는 대사가 없는 손인형극에서 음향과 조명을 맡아 이야기를 함께 이끌어간다.
소박하고 잔잔한 이야기는 서씨 내외의 삶과 닮았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서씨는 우연히 손인형 만드는 법을 배워 1997년 인형 극단을 차렸다. 프리랜서 음향 엔지니어이던 우씨는 귀농을 고심 중이던 1998년 아내의 공연을 보고 친해졌다. 부부는 지난 한 해 전북 장수군 개북면의 산 아래에 직접 황토집을 지었다. '제일 가까운 이웃이 300m 떨어진' 집 주변에는 야생취와 쑥, 고사리가 쑥쑥 올라온다. 그곳에서 농사도 짓고 나물도 캔다. 오후 8시쯤 잠자리에 들고 오전 2, 3시쯤이면 일어나는 단순한 생활. 진돗개 한 마리와 셋이서 산다. 우씨는 "대구처럼 복잡한 대도시는 적응이 너무 어려워요. 청정지역에서 살기 때문에 그런가보다"며 웃었다. 이번 대구 공연은 2005년 8월 민예총 민족극 협의회 주최로 성주 성밖숲에서 열린 '민족극 한마당'에 이은 두번째 지역 나들이다.
욕심 없는 생활이지만, 손인형극에 대한 애착만큼은 크다. "인형극을 아이들이나 보는 작품쯤으로 여기는 게 가장 안타까워요. 일부러 저녁 공연을 마련한 것도 온 가족을 위해서였어요. 언젠가는 손인형극이 많은 사랑을 받을 때가 오리라고 믿고 있어요."공연은 10일까지. 평일 오후 4시, 7시30분/주말 오후 3시, 5시. 053)639-0399.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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