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파울 요제프 괴벨스

입력 2009-05-01 06:00:00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1945년 오늘 독일 베를린의 총리 관저 지하 벙커에서 아내와 아이 6명을 데리고 권총 자살했다.

그는 "선전은 정신적 인식을 전할 필요도 없거니와 점잖을 필요도 없다. 성공에 이끄는 것이 좋은 선전이다"고 했다. 대중과 매스미디어를 결합한 그의 선전선동술은 안타깝게도 20세기 독재정권의 교본이 됐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다리가 굽어 1차대전 때 병역 면제됐다. 가톨릭재단 장학금을 받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독일문헌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22년 나치스에 들어갔다. 히틀러가 수상에 지명된 지 두 달 만인 33년 3월 내각 선전상 겸 제3제국 문화원장에 임명돼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히틀러가 독일 전체주의 정권의 주연이었다면 괴벨스는 무대감독이었다. 인기 프로그램 '라디오 아워'에 매일 저녁 '오늘의 목소리'란 코너를 신설, 수상 관저 르포를 하게 했다. 선전영화 걸작으로 꼽힌 '의지의 승리',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 '민족의 제전' '미의 제전' 등도 그의 지휘 하에 만들어졌다.

대중조작과 선전의 귀재였던 그는 20세기 음울한 역사의 무대감독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뒤 소름끼치는 최후를 맞았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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