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야생동물 지정…행복한 시절은 끝났다
비둘기 하면 '평화의 상징'이란 이미지가 등식처럼 붙어다닌다. 그런 긍정적 이미지 덕분에 비둘기는 오랫동안 호의호식했다. 하지만 이제 행복한 시절은 갔다. 비둘기가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돼 올 6월부터 퇴치 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에 나오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는 구절이 현실화되고 만 것이다.
◆ '비둘기 천국' 공원에선
공원은 비둘기를 떼로 볼 수 있는 최적지. 특히 대구 도심 속 달성공원은 비둘기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장소 가운데 하나다. 이곳엔 비둘기가 300마리 이상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1일 오후 달성공원을 찾았다. 몇몇 유치원에서 단체로 현장체험을 온 까닭에 곳곳에 어린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속에선 어김없이 비둘기들이 눈에 띄었다. 그야말로 '어린이 반, 비둘기 반'이었다. 어린이들은 비둘기에게 먹이를 던져주는가 하면 비둘기를 쫓아다니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비둘기는 여전히 사람들과 공생하는 더할나위 없는 친구였다.
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해 포획하는 정책에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가족 나들이를 온 박연일(29'대구 동구 지묘동)씨는 "공원이나 휴식처 등에 비둘기가 적으면 무척 서운하고 휑할 것 같다"며 "아이들도 좋아하고 교육적으로도 긍정적이라 포획 정책에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북대 2학년 전황주(20)씨도 "도시 경관에 있어 비둘기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많다"며 "무조건적으로 잡는 것은 반대"라고 했다.
하지만 관리자 입장에선 견해가 달랐다. 수의사 윤성웅씨는 "동물에게 주는 사료의 10~20%를 비둘기가 훔쳐 먹는가 하면 지붕이나 인도 등에 무차별적으로 배설물을 쏟아내 청소에 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비둘기와의 전쟁 본격화
환경부는 지난 3월 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분류해 올 6월부터 퇴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드는 내용의 '야생동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유해 야생동물로 분류되면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은 사람이 해당 동물을 포획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 환경부는 "비둘기가 환경공해를 일으키고 세균을 퍼트리는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많았지만 근거 법령이 없어 지금까지 퇴치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사실 비둘기는 지난해 11월 전까지는 '가축'으로 분류돼 농림수산부의 관할이었다. 가축은 주인이 있어야 하지만 비둘기는 서식 형태상 그 신분이 불분명해 끊임없이 논란이 있어왔으며 각 지자체에서도 담당부서가 아니라며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빠 실질적인 대책마련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집비둘기가 야생동물에 해당된다는 법제처의 법령해석에 따라 현재의 신분을 갖게 됐으며 환경부에서 관리할 수 있는 법적 책임이 생겼다. 이에 따라 이 같은 조치가 나오게 된 것.
환경부는 비둘기가 유해 야생동물로 분류되더라도 국민 정서상 퇴치 위주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먹이 안 주기 캠페인이나 피임약이 혼합된 먹이 주기 등의 운동을 우선적으로 펼치고 순차적으로 먹이를 줄 경우 벌금을 물리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 또 비둘기 집단 거주지에서 알을 수거하거나 곡식창고에 서식하는 비둘기를 덫으로 잡아 안락사 시키는 등의 방안도 함께 추진할 예정이다.
환경부 자연자원과 조갑현 사무관은 "살(殺)처분 위주로 가지 않기 위해 별도로 비둘기에 한해 지침을 만들 것이며 6월 중에 공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어떻게 해롭기에
비둘기 유해 논란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각 지자체마다 이로 인한 민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환경부의 조치도 비둘기 피해로 인한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지자체가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대구 중구청 환경과 임선우씨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비
둘기 배설물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비둘기 유해 논란은 무엇보다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대거 들여온 도심 비둘기는 현재 전국적으로 100만여 마리가 서식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에서도 수천마리가 머무르고 있다. 시민들이 여기저기서 먹이를 주다보니 갈수록 살이 쩠고 '닭둘기'(닭+비둘기'퉁퉁하게 살만 쩌 닭처럼 뒤뚱뒤뚱 걷는다는 의미)란 별칭까지 생겼다. 번식력도 왕성해져 1년에 1, 2차례 알을 낳던 습성도 연중 5, 6번 산란으로 늘어났고 이는 개체수를 더욱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비둘기는 각종 세균을 옮기는 주범이며 배설물 등은 건물들을 부식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한조류협회 송순창 회장은 "비둘기의 깃털 등이 아토피성 피부염을 일으키는 원인이며 비둘기가 폐결핵의 숙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잡식성이다보니 음식물 쓰레기들을 마구 먹으면서 각종 병균이나 좋지 않은 원인체를 전염시킨다는 것.
또 건물 훼손도 심각하다. 배설물이 강산성이라 각종 건물을 부식시킨다는 것. 송 회장은 "아파트나 자동차 뿐 아니라 문화재도 비둘기 배설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며 "비둘기는 바퀴벌레와 함께 환경 공해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동물"이라고 했다.
◆ "너무 성급하다" 지적도
하지만 동물 보호단체 등 일부에선 비둘기의 유해 야생동물 지정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비둘기 피해의 원인과 유해성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 분석 등이 없이 단순히 유해 동물로 정해 포획하도록 한 것은 생태학적으로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며 자칫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
동물사랑실천협회 한민섭 사무국장은 "비둘기는 사람들의 무자비한 난개발로 보금자리를 잃고 우리 주위에 머무는 것 뿐이며 개체수가 증가한 것도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먹이를 던져줬기 때문"이라며 "결국 인간의 잘못으로 비둘기에 의한 피해가 생겼는데 그 책임을 비둘기에게만 돌리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환경부에선 살처분 위주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일단 유해 동물 지정을 법적으로 해놓으면 각 지자체에서 얼마든지 확대 해석, 살처분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했다.
혹 살처분를 하더라도 효과가 적다는 입장이다. 최근 거문도에서도 고양이가 급격히 늘어 살처분 결정이 났지만 효과가 적어 결국 고양이들을 중성화시키기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
한 사무국장은 "이 같은 대증요법보다는 전문가와 시민단체, 일반 시민 등이 다같이 참여하는 공청회 등을 열어 공론화를 시키는 한편 비둘기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 등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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