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졸속 정책에 부작용 속출, 신중한 샷으로 '뒷손' 댈 일 없애야
이명박 대통령이 고 정주영 회장의 참모로 일하던 시절의 일화다. 어느 날 정 회장이 막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MB를 데리고 골프장엘 나갔다. 정 회장이 사업상 챙겨야 할 언론계 인사들과의 친선 접대 골프 자리라 王(왕)회장을 모신 참모였던 MB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배운 지도 얼마 안 된데다 긴장을 하고 있었으니 공이 제대로 맞을 리가 없었다. 손님들 앞에서 '투닥'거리는 골프 솜씨를 참고 지켜보던 정주영 회장이 드디어 폭발했다. 언덕처럼 경사가 높아 홀 그린이 잘 안 보이는 속칭 '砲臺(포대) 홀'이라 부르는 오르막 홀에서였다. MB가 친 공이 그린(green) 언덕 쪽으로 갔다가 다시 쪼르르 굴러 내리고 다시 치면 또 굴러 내리고 거푸 몇 번을 굴러 내리는 걸 본 정 회장의 일갈, '저 친구는 일도 저렇게 해!'
무슨 일이든 어려운 상황일수록 신중하게 한 번에 제대로 해야 뒷손 댈 일이 적어진다는 요령을 지적한 것이다. 현대건설 최고의 참모로 알려진 MB도 정 회장의 눈에는 한 번에 끝낼 일을 서툴게 서둘러서 안 해도 될 뒤치다꺼리를 더 만드는 미숙함이 자주 보였다는 얘기다. 지금 정 회장이 대통령이 된 MB를 지켜봤다면 어떤 평가를 할까. 집권 이후 설익은 졸속 정책과 미숙한 시행착오로 국정이 멈칫거린 지난 1년간은 분명 '아직도 일을 저렇게 하는군'이라고 했을 것이다.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지금도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엇박자 정책으로 불필요한 뒷설거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걸 본다면 틀림없이 똑같은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헌 차를 새 차로 바꿔 사면 세금 깎아주겠다는 선심정책만 해도 공연히 몇 달 앞서 발표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자동차 업계를 더 힘들게 했다. 한시적 규제 유예 제도라는 것도 규제 대상 선정은 물론이고 부처 간 협의나 경제단체 의견 수렴도 없이 불쑥 내놓아 공장 신'증설을 계획 중이던 기업들조차 손을 놓게 만들었다.
건설회사 지원을 위한 미분양 펀드 조성도 작년 10월에 발표만 내놓고 구체적 계획이 나온 건 다섯 달 뒤였다. 다세대 주택 양도세 중과 폐지안 역시 한 달 내내 우왕좌왕이었다. 'MB 정부 정책 믿고 있다간 낭패 본다'는 불신만 키워 온 것이다. 식약청의 석면 오염 파동 조치 역시 신중하고 때맞춰 제대로 관리했으면 뒷손을 덜 수 있는 일들이다. 'MB 골프'와 같은 맥락이다.
특히 대량 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참여 문제는 국가안보가 걸린 사안이었음에도 'MB 골프'처럼 굴러 내렸다, 퍼 올렸다, 갈피를 못 잡았던 전형적인 사례다. PSI 참여를 발표하기로 결정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하고 대통령에게는 보고조차 빼먹고도 청와대는 외교부의 미숙한 대응을 탓하고 외교부는 청와대의 섣부른 발표를 나무라고 통일부는 외교부의 협의 부재를 따지는 등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했었다.
이제 임기 30%를 지나가고 있는 이 대통령으로서는 더 이상 왕회장의 질책이나 받던 참모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임기 초반 촛불에 놀라 떠밀리고 흔들렸던 미숙함을 떨치고 어떤 어려운 砲臺 홀에서도 신중한 샷으로 단 한 번에 공을 올리는 식의 수완을 보여야 할 때다. 그나마 PSI 혼선 과정에서 'PSI 참여 시기가 지금이 適期(적기)인가'라는 말 한마디로 꼬여있던 부처 간 마찰을 잠재울 수 있었던 카리스마는 작은 변화다. 어쩌면 그런 변화는 MB가 청와대와 정부 각료 참모들에게 '일도 저렇게 해!'라고 질타할 수 있는 안목과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신호로 볼 수도 있다. 다행히 그렇다면 MB 정부의 중'후반기는 그나마 희망이 있다.
이제 MB는 골프장에서 핀잔 듣던 미숙한 참모가 아니라 거꾸로 부하들의 국정게임 솜씨를 보며 '일도 저렇게…'라고 큰소리칠 수 있는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지닌 정치의 왕회장이 돼야 한다. 더 이상 중구난방 말만 앞서고 뒷손질 잦은 아마추어 정부를 이끌고서는 한 치의 빈틈만 보여도 촛불을 들이댈 좌파세력을 눌러가며 나라를 살찌워갈 수 없다.
金 廷 吉(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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