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빌딩 키 높이 경쟁

입력 2009-04-23 15:03:54

서울 여의도 63빌딩(250m)은 수십년간 우리나라 초고층 빌딩의 대명사로 군림해 왔다. 최근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73층'264m)나 목동 하이페리온(69층'256m) 등이 잇따라 생겨 옛 명성에 흠집이 생겼지만 여전히 63빌딩은 초고층 빌딩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4, 5년 후엔 63빌딩은 아예 명함조차 못 내밀게 생겼다. 서울을 비롯한 각 대도시들이 앞다퉈 100층이 넘는 '마천루'를 계획하거나 건설 중이기 때문. 늦어도 10년 뒤쯤엔 우리나라에도 100층 빌딩들이 즐비하게 생겨나 외국 부럽지 않은 랜드마크를 자랑할 전망이다.

◆키 높이 경쟁 뜨겁다

국내 각 도시별로 초고층 빌딩 경쟁이 치열하지만 역시 서울이 가장 앞서간다. 비행 안전 논란으로 15년을 끌어오던 제2롯데월드가 최근 정부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음에 따라 서울의 초고층 빌딩 건축사업들은 탄력을 받게 됐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것은 용산국제업무지구에 세워지는 용산 랜드마크타워. 이 타워는 기존 계획(620m)보다 높은 665m(150층 규모)로 지어질 계획. 완공되면 국내 최고 높이인데다 세계적으로도 '버스 두바이'(818m, 2009년 완공)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된다. 2011년 4월에 착공, 2016년 12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상암동 DMC(디지털미디어시티) 서울라이트도 용산 랜드마크타워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 빌딩은 최근 용산 랜드마크타워가 기존 계획보다 45m 높게 계획함에 따라 국내 최고층이란 기록을 내줬지만 높이 640m로 140층 규모로 만만치 않다. 6성급 특급호텔과 주거'업무'판매시설 등이 들어서며 9월 공사를 시작, 2015년 3월 완공 계획이다.

논란이 컸던 제2롯데월드 슈퍼타워도 건축허가와 함께 초고층 대열에 합류했다. 555m, 112층 규모로 지어질 슈퍼타워는 호텔'사무실'면세점 등으로 꾸며지며 내년 상반기에 공사에 들어가 2014년쯤 선보일 예정이다.

이 밖에 현대차그룹이 뚝섬 일대에 110층짜리(550m) 사옥을 추진하고 있고,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에는 110~120층(600m) 규모의 '그린게이트' 건설이 계획돼 있다.

부산 또한 서울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중앙동 옛 부산시청 부지에 들어설 부산롯데월드는 높이 510m, 120층짜리 초고층 건물로 각종 엔터테인먼트 요소로 꾸며져 2014년께 완공되면 새로운 부산의 명소로 우뚝 설 전망이다.

호텔을 비롯해 콘도'스파'워터파크'해양동물쇼장 등 관광 인프라가 모두 갖춰질 해운대관광리조트도 높이 511m, 117층짜리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빌딩이다. 부산도시공사가 올 7월쯤 공사에 들어가 2014년 말 완공할 계획이다. 해운대 센텀시티 내 월드비즈니스센터(WBC) 솔로몬타워도 108층 432m 높이로 지어져 '100층 이상 클럽'에 가입한다. 이 빌딩은 2013년 5월쯤 선보인다.

인천도 높이 경쟁에 빠지지 않는다. 송도 인천타워가 대표적이다. 송도 국제도시에 세워질 이 건물은 쌍둥이 형태의 두 건물에 3개의 스카이 브리지가 연결되는 특이한 형태로 613m, 151층 규모를 자랑한다. 2014년 말 완공되면 인천의 새로운 상징이 될 전망이다. 청라지구 내 중앙호수공원에 들어서는 시티타워도 인천의 기대작이다. 높이 450m, 110층 규모로 서울 남산타워처럼 상징탑으로 지어질 예정이다. 2010년 공사에 들어가 2013년 완공될 예정이다.

◆왜 마천루인가

이처럼 각 도시별로 마천루 건설 경쟁이 부는 가장 큰 이유는 상징성, 즉 랜드마크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영남대 건축학부 박상민 교수는 "10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은 한 도시를 상징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고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건축사회 신동출 회장도 "사람들은 뉴욕 하면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맨하탄을 떠올리고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하면 약 800m의 버즈두바이를 연상하듯 초고층 건물은 그 지역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된다"며 "설사 그 도시를 가지 않았던 사람도 초고층 빌딩으로 인해 그 도시에 대해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테러단체 알 카에다가 2001년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테러를 자행한 것도 이 빌딩이 뉴욕뿐 아니라 미국을 상징하는 건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경제적인 측면도 중요한 요인이다. 갈수록 여유의 땅이 없어지는데다 땅값이 비싸지는 상황에서 작은 대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초고층 건물이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건축에 있어 제한 범위 내에서 용적률을 얼마나 높이느냐가 중요한 과제인데 초고층 건물이 하나의 대안이라는 것. 박 교수는 "50층 건물을 3개 짓는 것보다 150층 건물 하나를 짓는 게 경제적"이라며 "100~150층 정도의 초고층 빌딩은 어느 정도 경제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완공 후의 경제적 유발효과도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보통 초고층 빌딩은 빈 땅에 지어지는 것이 아니고 숙식과 관광'교통'컨벤션 등 여러 가지 인프라시설이 갖춰진 위치에 들어서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것. 신 회장은 "초고층 빌딩엔 비즈니스와 쇼핑'문화'숙박 등 한 빌딩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도 "초고층 빌딩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고 주변에 각종 부대시설이 함께 만들어지기 때문에 초고층 빌딩 하나 잘 지어지면 한 도시의 경제가 확 달라진다"고 했다.

◆대구는 초라하다

서울'부산'인천 등 '3인방'의 무한경쟁에서 빗나가 있는 대구로 눈을 돌리면 초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3인방은 40~50층 빌딩을 넘어 10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을 바라보는데 한때 우리나라 '제3의 도시'라는 대구는 겨우 50층의 한계를 넘나드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수성구 범어동 200m, 54층 규모의 '두산 위브 더 제니스'(12월 말 완공)나 두산동에 217m, 57층 규모의 'SK 리더스 뷰'(2010년 완공'대구 최고층 빌딩)가 대구의 최고층 그룹이다. 이마저도 다른 경쟁 도시의 초고층 빌딩이 비즈니스나 엔터테인먼트용으로 추진되는 것과는 달리 모두 주거용이어서 경제성은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대구에 주상복합 시설을 제외한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K2 공군비행장으로 인한 비행 고도제한과 건축법상의 고도제한 등 규제가 복잡하게 얽혀져 실제로 지을 수 있는 건물 높이는 제한적이지만 무엇보다도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경쟁 도시에 비해 대구 경제가 많이 뒤지는데다 소비도시이기 때문에 초고층 빌딩을 짓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가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박 교수는 "조만간 동대구역세권에 130층 규모의 빌딩을 제안하려고 한다"며 "무엇보다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경쟁 도시들은 규제나 반발 등에도 강력한 추진력으로 초고층 빌딩 건축사업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 더구나 대구는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국제 행사를 잇달아 치르는 상황에서 국제도시로서의 상징이 절실하다는 명분이 있다. 신 회장도 "내륙도시라는 단점을 극복하고 장기적인 도시 발전을 위해서도 초고층 빌딩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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