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린 CEO형 정치가…부정부패로 퇴진
'관광의 나라' 태국이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반정부 시위대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의 격렬한 시위로 비상사태가 선포됐는가 하면 '아세안+3' 정상회의도 무산되는 등 태국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다행히 시위대가 자진 해산하면서 20여일간의 사태는 진정됐지만 여전히 정정(政情) 불안의 불씨는 남아있다. 이번 사태의 중심엔 탁신 치나왓 전(前) 태국총리가 있다. 친(親) 탁신 단체인 UDD는 2006년 9월 군부 쿠데타로 물러난 뒤 해외 망명 중인 탁신이 태국으로 복귀해 다시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
도대체 그가 태국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졌기에 이처럼 태국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을까. 탁신은 우리나라 박정희 전(前) 대통령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다. '태국 경제를 살린 CEO형 정치가', '부패와 권력남용의 상징' 등으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점이나 태국 경제를 단시간 내에 발전시킨 점, 독재에 가까운 독단적인 정치스타일 등이 그것이다.
그는 태국 북서부 치앙마이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1990년 시작한 무선전화 통신사업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억만장자 대열에 들어선다. 1994년 정계에 입문, 2001년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총리에 당선된다.
탁신은 집권기간에 저소득층 건강보험 확대, 농촌 융자 강화, 무상교육 제공 등 저소득층과 농민층을 지원하는 사업과 500억달러 규모의 도로'대중교통시설 등 인프라사업, 국영기업의 민영화 등으로 요약되는 탁시노믹스(Thaksinomics)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태국 GDP(국내총생산)는 2001년 4.9조 바트에서 2006년 7.1조 바트로 급증했고 빈곤층도 크게 줄었으며 국민소득도 전반적으로 향상돼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성과로 탁신은 2005년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의 정책 추진 속도가 너무 빠르고 혁신적이라 태국 사회의 기반을 흔들어놓을 정도였고 그 과정에서 각종 입찰비리와 뇌물 등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다. 기존 엘리트와 도시 중산층의 불만도 갈수록 쌓여갔다. 그런 불만은 2006년 초 자신이 설립한 태국 최대 이동통신회사 '친 코퍼레이션'을 19억달러를 받고 외국에 팔면서 폭발한다. 국부를 해외로 팔아넘겨 개인 이득을 취했다는 비판이 잇따랐고 중산층을 중심으로 탁신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제히 일어났다. 이런 퇴진 요구에도 그는 총선으로 계속 총리직을 유지하려다 민심이 들끊었고 결국 같은 해 9월 군부 쿠데타로 총리직을 잃고 지금까지 해외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그의 부정부패에도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그의 포퓰리즘(대중주의)적인 정치스타일을 잊지 못하는 데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에 박정희 향수가 있듯이 태국엔 '탁신 향수'가 있는 것이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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