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껍데기로 만든 섬/쓰레기 위에도 해가 뜨고/악취를 마시며 나무들이 자란다./아스팔트를 뚫고 솟아오르는/푸른 생명이 부러운가/뒤돌아보지 않는다면/너도 뿌리에 충실한 식물처럼./원시의 동물처럼 강해질 수 있어/너를 버린 인간을 용서한다면,/다시 강철로 단련되어/시장에서 팔릴지도 몰라/포장만 근사하다면······"-나무가 깡통에게 난지도를 지나며- 중에서
『도착하지 않은 삶』최영미 시집/ 문학동네 펴냄/127쪽/7천500원
"사랑은 방울토마토와 같아서 입을 다문 채 깨물지 않으면 액즙이 튀어나가 버린다. 입안에서 굴리다가 깨물면, 목구멍 가득 고이는 액즙의 향내······. 쓰든 달든 사랑에 누수가 없으려면 모름지기 입을 다물 일이다. 소리치며 사랑에 능한 이는 드물다. 자칫하면 턱이 빠져 말을 못 하니 사랑 고백도 어렵다."-내 사랑 옥봉- 중에서
『꽃 피는 삶에 홀리다』손철주 지음 / 생각의 나무 펴냄 /319쪽/1만2천원
인터넷에서 최영미는 시인으로 검색된다. 하지만 그녀는 꽤 오랫동안 시(詩)보다는 산문으로 기억된다. 그것은 그녀가 펴낸 시집의 숫자보다도 산문집과 미술 에세이, 그리고 장편소설의 수가 더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시인이다. 가끔은 사람들이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고 시인 역시 그 눈초리를 의식한 듯 산문집에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도 한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문제의 시집으로 남아 있는 한, 그녀는 운명적으로 시인일 수밖에 없다. 그녀가 『돼지들에게』이후 4년 만에 다시 들고 온 시집에는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여전히 시가 그녀의 화두였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19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이들이 꿈꾸어왔던 혁명이 일상에 묻혀버린 추억 같은 것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꿈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시대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과거에 노래했던 시대의 정신은 도덕성이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부끄러운 얼룩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삶 역시 소시민적 삶에 자신을 묻고 사는 이들에게 여전히 세상은 사람이 희망임을 일깨우지만 또 잊힐지 모른다.
봄은 글을 읽기보다는 그 볕을 즐기기 좋은 계절이다. 하얀 목련이 봄비에 피고 그저 봄바람에 지는 것이 서러울 수도 있지만 다시 올 봄을 기다림은 나이를 먹어가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애틋한 시간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봄날 읽는 손철주의 글은 맛깔스럽다. 마치 그의 글은 고운 화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400년 전에 소위 소실의 자리에 있던 여인 옥봉이 쓴 한시를 평한 손철주의 글 솜씨는 가히 피고 지는 꽃들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봄기운 같다. 산문의 아름다움이 여기 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닌 까닭은 마흔여덟의 봄을 즐기기 위해 그의 글을 놓기가 어려웠다는 것에 있다. 어쩌면 마흔아홉의 봄조차도 즐길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오고 가는 것, 꽃 피고 지는 것과 같지 않던가, 이 봄 가득 글에 취해보는 것 또한 즐거움이니.
전태흥(여행 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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