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아시아 공동 통화 단위' 성공하려면

입력 2009-04-20 10:52:38

금융시장 안정화 협력 구축 우리나라도 적극 참여해야

글로벌 경기 침체의 충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 사회의 최근 대응 방안 중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지역 내 금융통화 협력을 통한 안전망 구축이다. 특히 한'중'일 통화 스와프 규모 확대에 따라 외환시장 안정에 관한 논의를 발전시켜 아시아 공동 통화 단위(ACU)를 출범하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초국가적 기구를 설립하여 단일 통화로 엮어진 경제협력 체제를 이룩한 사례는 유럽연합이 대표적이다. 이번 금융위기 때 유럽연합 국가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을 뿐 아니라 달러화에 맞서 역내 금융시장을 방어할 수 있는 면역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작년에 우리나라와 유사한 환율폭등을 경험한 아이슬란드도 유로화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동아시아국가들 역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지역경제 체제 도입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바 있다. 한'중'일 3국은 대외 무역의 상호 의존도가 클 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외환 보유국이자 미국 채권 보유국으로,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금융통화 체제는 취약한 모습을 보였고 금융 위기가 있을 때마다 환율 충격에 노출되었다. 최적통화지역이론 연구의 권위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고 유로화 출범에 핵심 자문 역할을 맡은 바 있는 로버트 먼델 교수는 5년 전부터 아시아 지역의 안정된 성장을 위해서는 단일통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단일통화 출범의 전 단계로 지역 내 가장 안정적인 통화를 기축 통화로 삼아 다른 국가의 통화를 연동시키는 방식을 제안하였는데, 문제는 이 기축 통화를 어느 나라의 통화로 정할 것인가에서 발생한다. 역사적, 문화적 공통분모가 상당하고 경제 규모가 비슷한 국가가 많아 통합이 비교적 쉽게 이루어졌던 유럽에 반해 동아시아는 시작부터 일본과 중국이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견해를 좁히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ACU에 관한 논의는 2006년에 이미 시작되었으나 중국과 일본의 입장 차이로 인해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작년부터 시작된 미국발 금융 한파로 인해 달러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규모의 지역 통화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요국들이 절감하게 되었으며, 올해 2월 종전의 양자 간 통화스와프협력을 다자간 협정으로 발전시키고 1천200억달러 규모의 통화 기금을 조성하는 데 합의하였다. 이는 시작에 불과한 것으로서 앞으로 IMF와 유사한 아시아통화기금(AMF)조성 및 공동 통화, 공동중앙은행 설립 등이 이루어져야 지역 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국가뿐만이 아니라 중동 및 남미 경제권 역시 경제 통합을 위한 준비작업을 서둘러 착수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경제체제 이후의 상황을 대비하여 지역주의에 기반한 경제블록화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움직임의 일부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최근의 세계 정세의 움직임과는 다르게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과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지역경제권 통합에 대한 인식과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어 있지 않다. 세 나라 모두 FTA 등의 전략적인 논의를 하기에는 자국 산업 보호, 기술이전 문제 등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지정학적 위치가 가까운 만큼 정치적, 역사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이 경제권 통합의 효과를 알면서도 선뜻 시행하지 못하는 원인일 것이다. 비교적 동질적인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유럽이 EU로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되는 데에도 50여년 가까이 걸렸고, 더군다나 북한으로 인한 지정학적 긴장 관계를 고려하면 안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통합은 불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통화협력체제 구축은 상호 협력이 전제된다면 비교적 단시일 내에 가능하며, 공동 기금 및 공동중앙은행을 통한 블록권 형성만으로도 지금까지 환율 충격에 휘청거렸던 불안 요소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으로 볼 때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아시아 지역 경제의 허브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조하현(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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