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무심코 걷지만 제게는 엄청난 노동입니다."
시각장애인에게 대구의 거리는 잔혹한 정글이다. 뚝뚝 끊어진 유도블록과 곳곳에 튀어나온 볼라드(차량 진입을 막는 짧은 기둥)는 시시각각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위협한다. 장애인의 날(20일)을 앞두고 17일 오후 대구시각장애인연합회 이태용(시각장애 1급)씨와 함께 대구 도심을 걸었다. 중구 남산동 대구시각장애인복지회관에서 지하철 1호선 명덕역을 거쳐 동성로까지 가는데 2시간가량 걸렸다.
◆유도블록만 따라가단 낭패=시각장애인 복지회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차량들이 이씨를 위협했다.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은 대로변에만 설치돼 있을 뿐 이면도로에는 안내시설이 없다. 차를 피해 유도블록을 찾아내도 걷기는 순탄치 않다. 유도블록을 따라 흰 지팡이를 짚던 이씨가 멈칫했다. 1㎡ 넓이의 맨홀 뚜껑으로 인해 유도블록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지팡이를 툭툭 짚어본 뒤에야 이씨는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게다가 유도블록 위에 주차된 차량도 많다. 걸핏하면 승합차에 무릎을 부딪쳤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가장 위험하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안전하다고 느낄 때만 건널 수 있어요." 200여m를 걷는 동안 만난 횡단보도만 4곳. 건너도 문제다. 시각장애인은 일직선으로 걷는 경향이 있으나, 유도블록은 지나왔던 유도블록 방향과 상관없이 도로 모양에 따라 제각각으로 시작하기 때문. 이씨도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몇 번이나 차도 쪽으로 걸었다. 불법 유인물 부착을 막기 위해 전봇대를 감싼 오톨도톨한 커버도 시각장애인에게는 흉기나 다름없다. 이씨는 "몇 달 전 뾰족한 커버에 얼굴을 부딪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명덕역에 이른 이씨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음성안내를 따라 길을 건넜지만 횡단보도에서 엘리베이터까지 유도블록이 끊어져 있었다. 방향을 잡지 못한 이씨가 7~8m 거리를 이동하는데만 10여 분이 걸렸다. 중앙로역에서 내린 뒤에도 난감하다. 어디로 어떻게 나가야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하철 출구 번호도 점자 표시를 해주면 좋겠다고 혼자 말했다.
◆도심 거리는 정글=보행자 전용거리로 조성된 동성로.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보행자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 유도블록이 없기 때문이다. "유도블록이 없는 곳은 시각장애인에게는 길이 아닙니다. 몇 번을 다녀봐도 방향을 찾지 못하거든요." 실제 도심 거리는 유도블록은커녕 차량과 사람, 물건 진열대 때문에 흰 지팡이를 제대로 짚지 못했다. 행인들과도 자주 부딪쳤다. "지팡이에 행인들이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있어 마음대로 내밀지도 못해요. 지팡이가 부러지는 경우도 많고요."
1.3m 넓이로 거칠게 다듬어진 대리석길이 이어졌지만 이씨는 "시각장애인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길"이라고 했다. "유도블록 규격과 다르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대구백화점~삼덕치안센터로 향하는 인도는 유도블록이 5m 간격으로 생겼다 끊어지길 반복했다. 끊어진 유도블록 사이를 가로막은 전봇대와 가로등이 이씨를 위협했다. "누군가의 도움없이 도심을 걷는 건 자살행위예요. 정신없고 힘들어서 말이 안 나오네요." 그는 "대구는 시각장애인들이 살아가기엔 너무나 힘든 도시"라고 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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