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고 불편한 '일상' 다시보니 편하고 재밌네

입력 2009-04-16 16:03:56

젊은 작가들 '일상의 재발견'전시

일상은 편하고도 불편하다. 담담해서 편안하지만 심심해서 불편하다. 생활의 일상도 마찬가지. '이건 아니야'라며 늘 일탈을 꿈꾸지만 과연 그럴 필요가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드물다. 젊은 작가들이 '일상의 재발견'을 화두로 들고 나왔다. 탈출할 게 아니라 다시 보자는 말이다. 이들의 눈에 비친 일상은 결코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다. 그러기는커녕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우리집에 놀러올래?

제목부터 일상스럽지 않다. 개막 전날인 지난 13일 대구문화예술회관 2전시실로 가 봤다. 육각형 전시공간 속으로 이사 작업이 한창이었다. 작가들의 집을 일주일간 이곳으로 옮겨놨기 때문에 작품 전시가 아니라 '이사'인 셈이다. '우두머리'격인 서기환(39)씨는 '안 좋은 머리에 계명대 동양화과를 졸업, 없는 돈에 중국 중앙미술학원을 수료하고, 나이 들어 운 좋게 서울대 대학원 졸업한다며 고생 중'(팸플렛 내용을 고스란히 옮김)인 사람이다. 전공 후배 6명을 서울, 부산에서 끌어들여 지난 10개월간 회의한 끝에 전시회를 꾸몄다. "작업 공간을 그대로 보여주자는 겁니다. 작가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작품을 만드는 그 공간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서기환은 20평 남짓한 작업실 구석구석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뒤 일일이 A4용지에 프린트해서 벽면을 장식했다. 테이블 위 오디오, 책장에 차곡차곡 꽂힌 책들의 이미지도 그대로 옮겨졌다. 사뭇 진지한 권혁태는 작품들을 벽에 걸어놓는 것으로 이사를 대신했고, 동물을 사랑하는 서승은은 컴퓨터까지 옮겨와서 작업실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다. 신미경은 검은 띠로 입체감을 살린 작업 공간을 재현했고, 부산 아가씨 이윤지는 차 한 잔 나누고픈 테이블을 놓고 관객들을 반긴다. 최현실의 작업실은 특이하다. 매일 그려본 드로잉을 봉투에 담아 자신에게 우편으로 보냈고, 그렇게 모은 편지 봉투를 벽면에 나란히 장식했다. '내게 바늘은 붓, 실은 물감, 천은 캔버스'라고 말하는 황소림은 깔끔하게 작업실을 꾸몄다. 전시장에 가면 그저 작품만 보고 오는 게 아니다. 비록 옮겨놓은 가상의 작업실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일상을 보내는 공간 속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상상할 수 있다. 19일까지 열리는 '우리집에 놀러 올래?'는 재미있는 전시회다.

◆130

전시회 제목이 '130'인지 단체전을 하는 그룹 모임이 '130'인지 궁금했다. 물어보니 '둘 다'라고 했다. '130'은 1분30초를 뜻한다. 작가는 몇 달이 걸려서 죽어라고 작품을 만들었더니 관객들이 바라보는 시간은 평균 1분 30초. 사실 그 만큼이라도 바라보면 다행이다. 마치 시장 물건 구경하듯이 작품을 그저 힐끗 보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냉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단체 이름이다.

하지만 이들은 냉소적이라기보다는 실험적이다. 일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들이 작품마다 담겨있다. 모임의 살림살이를 맡은 김은영씨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가 '~정도'라는 말 밖에 듣지 못했다. "96학번부터 04학번 정도까지 있고, 회원은 25명 정도인데, 작업을 하는 사람은 10명 정도"라고 했다. 숫자를 네 번 말하면서 정확한 것은 단 한 차례도 없다. 미술하는 사람은 다 그러냐고 물었더니 "뭐, 그런 편이죠"라며 전혀 미안하거나 불편한 기색이 없다. 모임 성격도 딱 부러지지 않는다. 원래 영남대 졸업생들이 모였는데 동국대, 계명대 출신도 잠시 있었고, 전공도 동양화나 조소를 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지금은 서양화 전공 뿐이고, 하지만 작품을 보면 조소나 공예를 전공한 듯 보이기도 한다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자는 건지. 하지만 바로 이것이 '130'이다. 소재에 구애받지 않고 주제에 얽매임이 없다. 캔버스 대신 나무판, 가죽, 청바지 천 등이 쓰인다. 붓 대신에 실로 바느질하듯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이승현의 작품 '가십'(gossip)은 레고 조각들로 만들었다. 작품 한 가운데 '지금 떠들어대지만 언젠가는 책임져야 할 걸'이라며 영어로 적었다. 획일적이고 상업적인 작품보다는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130'. 이들의 작품을 보는데 1분30초로는 턱없이 모자랄 듯 하다. 봉산문화회관에서 19일까지.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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