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인 배경을 이해한다구 나쁠 건 없잖아. 섹스와 경제를 분리할 수는 없거든.(극 클라우드 나인 중 빅토리아의 대사) 『카릴 처칠 희곡집』 카릴 처칠 지음/이지훈 옮김/평민사/8000원
영국의 유명 극작가인 카릴 처칠은 급진적 페미니스트이자 막시스트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클라우드 나인'에 나타난 위의 대사는 결국 페미니즘과 막시즘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가치임을 암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는 '탈식민'도 '인종차별'도 '성적 소수자들'의 문제도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음을 성토한다. 그것은 권력의 문제이자, 피지배의 문제이자, 고통받는 약자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한 어젠다가 다른 어젠다에게 '기다려라'라고 말할 수 없는, 일제히 변화를 모색해야 할 동병상련의 문제들이다.
처칠이 70년대 말에 제기한 이러한 문제들은 2009년의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유효한 논쟁거리를 가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곳곳에서 너무나 쉽게 '섹스와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해 버린다는 점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북한이나 티베트의 인권문제에 은근슬쩍 침묵해버리는 '진보'는 당황스럽다. 여성 해방을 주장하면서 철거민들의 아픔을 도외시하는 페미니스트나,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다면서 비정규직의 설움을 외면하는 노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변명에 분개하면서, 국내의 집창촌 문제를 '그 여자들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 식으로 쉽게 이야기 해버리는 것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자가당착의 한 예다.
보다 큰 대의를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경제성장도, 민주화도, 노동운동의 신장도, 여성해방도 어쩌면 다른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가열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친 자들이 그나마 거둔 성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가 2009년이고 보면, 이제는 '이것만이 당면시급한 가치이므로 이것부터 해결하고 볼 일'이라는 고집보다는, 모든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를 골고루 돌아볼 수 있는 일관된 사상과 정책이 아쉬워진다. 대를 위해서 침묵하고 희생했던 많은 가치들이 이제 그 동등한 목소리를 낼 시대가 열렸으면 하는 것이다. '섹스와 경제'를 분리할 수 없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분리할 수 없고, '탈식민'과 '트랜스젠더'를 분리할 수 없는 진정한 진보가 소중한 첫 돛을 펴기를 기대한다.
내가 보기에 민주노동당을 멍들게 한, 그래서 반드시 교정되어야 할 '자주파'의 오류는 (종북주의보다는) 오히려 '패권주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노동당에 패배를 안겨 준 근본적 원인은 노동자 서민 정당을 표방하면서도 그들로부터 신뢰를 획득하지 못한 데 있었다. ...... 그렇게 해서 3월 16일 서둘러 진보신당의 닻을 올렸다. 『당당한 아름다움』 심상정 지음/레디앙/295p/13000원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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