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영화를 보자] 극장전(劇場前)

입력 2009-04-11 06:00:00

SBS '영화특급' 13일 오전 1시

'극장傳-영화이야기'. 내 이름은 전상원이다. 수능 시험을 마치고, 형에게 두둑한 용돈을 받아 종로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우연히 어느 안경점 앞에서 중학교 때 첫사랑 영실을 만났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극장前-관객이야기'. 내 이름은 김동수다. 오늘 종로의 한 극장에서 선배 형이 감독한 영화 한 편을 봤다. 영화 속 주인공 이야기가 예전 내 모습 같았다. 극장 앞, 거짓말처럼 영화 속 여주인공을 마주쳤다. 여배우의 이름은 최영실이다. 그녀 역시 영화를 본 것 같다.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영실을 뒤로하고, 말보로 담배를 한 갑 샀다. 동창회 부회장 녀석이 저녁 때 선배 감독을 위한 후원 모임에 나오라고 전화를 한다. 사실 선배는 지금 입원 중이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작정 종로 길을 걷는다. 영화 속에 등장한 곳들을 돌아보고 싶어졌다.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여배우 영실이 스쳐 지나간다. 그녀 역시 영화 순례 중인가?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네보니 의외로 친절하게 대해준다. 오늘, 그녀가 나의 운명 같다.

영화로 인해 하루가 바뀐 한 남자의 이야기. 누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며칠간 기억 속에 지내본 경험이 있을 터. 영화 '극장전'은 10년째 감독 데뷔 준비 중인 동수가 선배 감독의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선 어느 하루, 그런 같은 경험을 다시 보여주는 영화다. 주인공 동수는 극장 앞에서 만난 영화 속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동창들과 본 영화 속 장소를 거쳐가며 만나는 택시기사, 실직자 데모대, 포장마차 오뎅집 주인 등과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변한다. 홍상수 감독은 '생활의 발견'이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의 전작을 통해 한 남자와 두 여자, 한 여자와 두 남자처럼 한정적인 인간 관계 속에서 깊이 파고드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깊이 파고드는 인간 관계를 이야기했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주기에는 불친절했다.

'극장전'은 주인공이 주변 인물들과 한층 넓어진 인간 관계를 맺고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색다른 삶에 대한 시각, 새로운 구성과 풍성함을 선보이고 있다. SBS '영화특급-극장전(劇場前)'(13일 오전 1시)을 통해 전작과는 사뭇 달라진 홍상수 감독의 새로운 시선을 접해볼 수 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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