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와 'WBC', 우리를 즐겁게 해줬지만 엘리트 체육엔
"운동하는 사람이 성적이 안 좋으면 무시당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지난 2006년 미식축구 슈퍼볼 MVP에 선정된 하인즈워드. 그가 MVP로 선정된 이후 눈길을 끈 것 중 하나는 운동을 하면서도 공부를 반드시 하라고 했던 그의 어머니 김영희씨의 교육법이었다.
국내에선 그다지 인기있는 스포츠도 아닌 미식축구. '미국식 축구'라는 낙인으로 별반 호응이 없던 우리나라에도 미식축구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특히 한국의 미식축구는 지난 2007년 미식축구 월드컵에서 5위에 오른 바 있기 때문. 재미있는 사실은 이 때 참가한 선수들은 프로선수가 아니었다는 것. 모두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이 모여 일을 낸 것이었다.
"언제까지 운동만 하는 기계로 만들겁니까. 강한 1명을 만들겠다는 꿈을 위해 우리는 다른 100명의 꿈을 뭉개고 있는 건 아닐까요."
대한미식축구협회 회장이면서 세계미식축구연맹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박경규(경북대 생물산업기계공학과) 교수는 운동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미식축구, 생소하지만 매력있다
-왜 하필 미식축구입니까.
미식축구는 종합스포츠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 스포츠입니다. 얼핏 보면 공을 갖고 단순히 뛰는 걸로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의 수비를 뚫고 조금씩 전진하고 여의치 않으면 공을 차기도 합니다. 작전을 잘 짜야 그것도 가능하기에 수싸움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미식축구의 매력은 간단한 규칙만 알면 체격조건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겁니다. 뚱뚱한 사람도 라인맨으로서 중앙에서 상대의 수비를 제어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을 정도니까요. 저 역시 1966년 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미식축구를 접했습니다. 당시에는 서울에만 대학팀 5개가 있었는데요. 지금은 대학팀 35개팀, 사회인 8개팀이 있습니다. 대한미식축구협회도 1946년 설립돼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합니다.
-지금도 미식축구는 생소합니다. 특히 도전하는 학생들이 적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미식축구에 기웃거리는 학생들은 대부분 처음 접하는 이들입니다. 하인즈 워드나 슈퍼볼, 김치볼(국내 미식축구 왕중왕전) 등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많은데요. 99%가 처음 미식축구공을 만지는 이들입니다. 제가 경북대 미식축구팀 감독직을 맡고 있기도 해서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가 많아 '왜 미식축구팀에 왔냐'고 물으면 대답은 비슷합니다. '과연 내가 미식축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온다는 겁니다. 바로 '도전정신'이지요. 자신을 발전시키고 강하게 만드는 도구로 미식축구를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대한미식축구협회장도 겸임하고 계십니다. 돈이 많이 안 드십니까. 저변확대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십니까.
일부 학교 경비원들은 주로 저를 운동장에서 만나기 때문에 체육교육과 교수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식축구팀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 제게 주어진 일이 있습니다. 교수로서 학생지도는 물론 연구에도 열심으로 임해야합니다. 미식축구는 본분을 더 잘 할 수 있게 만드는 촉매제입니다. 저는 생물산업기계공학과 교수이면서 경북대 미식축구팀 감독도 맡고 있습니다. 보통 회장이라고 하면 회비를 펑펑 내는 걸로 오인하시는데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올해로 4년째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만 돈으로만 스포츠를 부흥시킬 수는 없는 법입니다. 가까운 예로 2007년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미식축구 월드컵에 진출해 호주와 프랑스를 꺾고 5위를 차지한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전문적으로 운동만 하는 이들이 아닌, 말 그대로 공부하는 학생, 회사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이 선수로 참여해 거둔 값진 과실이었지요. 이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서울, 대구경북, 부산경남에만 지역협회가 있지만 앞으로 전국적인 규모가 되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저희 협회도 신생팀이 생길 경우 700만원 상당의 기본적인 장비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사회인팀 중 일부는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미식축구는 본분을 위한 수단이다.
-월드컵 얘기가 나왔는데요. 현재 대구지역 4년제 대학에는 미식축구팀이 다들 있습니다. 하지만 동아리 수준이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미식축구로 체육특기자가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실상 생활체육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주축을 이루지요. 이들이 월드컵에 참여한 국가대표 선수들이었습니다. 중·고교시절에 미식축구를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엘리트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2011년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할 선수를 선발해야합니다. 국내 1천명 정도의 선수가 있는데요. 이중 국가대표로 44명을 뽑습니다. 지난 대회때는 재일교포 선수가 14명, 국내선수가 30명 출전했습니다. 경북대 출신의 국가대표 선수도 2명 있었습니다. 이들은 미식축구를 밥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습니다. 동아리 수준이라고 해도 이들은 국제무대에서 상당한 실력을 뽐냈습니다. 이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동기부여였습니다. '과연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시험대였던 것이지요. 이들의 명색은 국가대표지만 모두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미식축구를 했습니다.
-미식축구를 본분을 위한 수단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다른 종목과 좀 다른 양상입니다.
"물론 호흡을 맞추기 위해 어느 정도 연습은 필요합니다. 미식축구도 단체운동입니다. 오케스트라가 소리를 내기 위해 끊임없는 연습을 하듯 호흡을 맞춰야 실력이 드러납니다. 때문에 저희도 하루 2시간 정도의 운동은 필수라고 봅니다. 또 더 질높은 플레이를 위해 상대팀 전력분석도 하고 공부도 합니다. 어디까지나 스스로하는 공부인 것이지요. 때문에 밥만 먹고 운동만 하는 엘리트 스포츠와 다르게 접근합니다. 하지만 미식축구를 소홀히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야말로 취미를 극대화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취미의 생명이 깁니다. 본업이 있으니까요."
-누구나 우승을 목표로 삼지 않나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걸 부담스러워할 것 같은데요.
"지고 이기는 건 하나의 과정입니다. 높은 산을 오르다가도 작은 동산을 오르고 내리는 걸 반복해야합니다. 우승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겁니까. 저도 처음에는 완전한 시스템을 갖춘 미국식 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국도 학생들의 공부는 기본입니다. 수업이 있어서, 시험이 코앞이어서 훈련 참가가 힘들다고 할 경우 당연히 그래야합니다. 학생의 본분은 학업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운동과 공부를 병행해서 둘 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오판입니다. 오히려 플러스요인이 됩니다. 국가대표까지 지낸 한 선수는 운동도 하면서 공채시험에 합격해 대기업에 취업했습니다. 하루 2시간 운동이 큰 부담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나머지 훈련도 자율이 되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체력적인 면에서 큰 도움이 됩니다. 침맞고 보약먹는 걸로 건강을 찾으려는 젊은이들도 있는데 그 생각을 얼른 버려야합니다. 건강에 가장 좋은 것은 운동입니다. 자신감 충족은 물론입니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연아'와 'WBC', 우리를 즐겁게 해줬지만 스포츠 엘리트주의에는 반대한다.
-일부에서는 새싹 때부터 키워야한다는 얘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한다고 다 잘하는 건 아닙니다. 제발 올인하지 마세요. 자칫 운동만 했다는 생각에 먼 훗날 피해의식만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난 운동부인데'라며 쓸데없이 우쭐대면서 특권의식을 가지게 된 것도 부작용입니다. 특권의식을 깨는 데 20년 넘게 걸립니다. 운동만 최선이라는 생각에 어린 운동선수들이 수업시간에 자고, 수업에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교사도 학생도 공부에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지요. 박찬호, 이승엽 같은 선수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새싹들의 피해도 적잖습니다. 이들의 인생을 어떻게 책임질 겁니다. 반드시 공부와 병행해야합니다. 운동기계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감독이나 코치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학부모도 더이상 없어야합니다.
-학원 스포츠의 폐해에 대해 지적하실 부분이 많은 듯합니다.
현재의 시스템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올인해 버리면 대안이 사라집니다. 교사와 학부모가 학생들의 꿈을 대놓고 짓밟는 것입니다. 운동으로 아이들의 밥벌이할 생각은 버려야합니다. 운동은 다른 잠재력을 끌어오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선택받은 이들이 하는 게 운동은 아닙니다. 공부를 하면서 운동소질을 계발해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김연아의 세계대회 우승과 WBC 야구팀의 준우승은 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쁩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박세리 키즈', '김연아 키즈'같은 부작용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겁니다. 좋은 성적을 거둔 스타들이 탄생하면 전국에서 붐이 일어납니다. 아이들을 닦달하지 말고 즐길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한 우물만 파야 성공한다고요? 그 전에 꼭 기억하셔야합니다. 아이들에게 기본은 인성교육이며 공부입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박경규는?
1948년생
1966년 서울대 농공학과 입학, 미식축구 시작
1976년 경북대 부임.
1978년 캔자스주립대학.
1983년 경북대 미식축구팀 창단
2004년 대한민국 농업과학기술상 근정포장수상
현 대한미식축구협회 회장, 세계미식축구연맹 수석부회장
-저서
초보자도 쉽게 즐길수 있는 미식축구(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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