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에 월백하고
이조년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배꽃 피는 철이다. 대구서는 드물게 배나무 가로수가 있는 성서 '이곡동 배나무 거리'에도 이화가 만발했다. 오늘은 마침 달이 가장 크게 보인다는 음력 열 엿새 날, 삼경(23시~01시) 쯤에 배꽃을 본다면 이 작품의 정경을 체험할 수 있을까.
고려 말의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이조년(李兆年·1269~1343)이 남긴 이 시조는, 언뜻 보면 남녀간 사랑의 정을 읊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춘정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임금을 섬기는 충신의 지극한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휘영청 달이 밝으니, 배꽃은 더욱 희고 달빛은 더 교교하다. 그것도 밤은 깊어 자정 무렵 천지가 고요할 시간, 그 고요를 깨뜨리듯이 소쩍새가 우는데, 물오르는 배꽃가지의 꿈틀거림 같은 마음을 소쩍새가 어이 알 수 있으랴마는, 이렇게 정이 많은 것도 내 마음의 병이라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로 풀 수 있다.
이조년은 충렬왕 12년에 문과에 급제, 왕을 모시고 원나라에 다녀오기도 했으며, 충선왕 모함 사건에 연루돼 무고하게 유배갔다가 풀려났다. 1340년 폐위되었던 충혜왕이 복위하자, 대제학이 되어 성산군에 봉해졌다. 그 후 충혜왕의 황음(荒淫)을 수차 간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내어놓고 물러났다.
충혜왕이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결국 원나라로 귀양 가던 중 병으로 죽었으니, 이 작품이 창작된 배경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간언을 수용하지 않아 벼슬자리를 물러났지만, 그래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성으로 밤잠 설치며 걱정한 것이다. 그 고결한 정신을 배꽃에 담뿍 묻혀낸 것이 이 작품이다.
시조 형식이 정제되기 이전인 고려 말의 작품이지만 문학성이 뛰어나 지금도 널리 애송되고 있다. 초장의 땅과 하늘, 중장의 나무와 새, 종장의 마음과 몸을 비벼 만들어낸 깊이와 넓이는 현대시에서도 쉬 찾기 어렵다.
특히 종장의 '다정도 병인 양하여'는 그 울림이 아주 크지 않은가. 다정이 병이라면 꽃 피는 소리로 왁자한 봄밤에 한번쯤 앓아도 좋을 것 같다. 다정에 잠 못 드는 것이 아니라, 무정(無情) 때문에 잠 못 드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문무학(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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