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후의 심판
작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제작연대: 1536~1541년
재료: 프레스코화
크기: 13.7 × 12.2m
소재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170여㎡에 이르는 넓은 화면, 그리고 그 화면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총 391명에 달하는 온갖 포즈의 인물들로 구성된 이 그림은 크게 네 개의 층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맨 위층의 왼쪽 반원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와 가시관 등을, 오른쪽에는 순교자들의 수난의 상징인 기둥 등을 메고 먼 곳으로부터 날아오는 천사들이 등장한다.
그 다음 층에는 심판자인 그리스도가 성모와 함께 여러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옹위를 받으며 내려오고 있다. 세 번째 층에는 중앙에 사방을 향해 나팔을 불며 심판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묵시록의 일곱 천사를, 그 좌우로는 천국과 지옥으로 운명이 엇갈리는 군상을 배치했으며, 마지막 층에는 지옥을 묘사했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미켈란젤로가 존경했던 단테의 '신곡'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이와 더불어 아폴로의 상을 닮은 그리스도의 얼굴과 인물들의 당당한 육체미,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한 듯한 지옥 묘사 등은 고대 부활이라는 르네상스의 시대풍조를 반영하고 있다.
이 그림은 거대한 외형적 규모만큼이나 많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우선 이 작품의 주문부터가 참혹한 역사적인 사건에 결부되어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패권을 다투고, 신·구교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던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인해 1527년 독일과 스페인의 군대가 로마를 침략해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참상을 연출했다. 이에 분노한 교황은 1533년 이미 60을 바라보는 미켈란젤로에게 성서의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주문하게 되는데 그 의도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1541년 10월 31일, 이 작품이 공개되자 교회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 우선 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모두 나체였으니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교회의 계속되는 수정 요구에 응하지 않았으나 마침내 그의 사망 직전인 1564년 1월 트리엔트공의회에서 '비속한 부분은 모두 가려져야 한다'는 칙령이 반포되자 결국 수정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히 그 작업을 제자 볼테라가 맡아 최소한으로 성기 부분에 덧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그러나 나체를 비난하는 데 앞장섰던 당시 교황청 전례 담당관이었던 비아죠 다 체세나(Biagio da Cesena) 추기경은 그로 인해 혹독한 대가를 받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이 추기경을 그림 하단 왼쪽 구석의 지옥에서 당나귀 귀에다가 뱀에 감긴 채로 성기를 깨물리며 고통 받는 모습으로 그려놓았다. 체세나 추기경은 교황에게 자신의 얼굴을 지워주도록 간청했으나 되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당신이 연옥에 있다면 몰라도 지옥은 나의 권한 밖이고 구출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밖에 없다." 권기준(대구사이버대 미술치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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