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와 함께 떠나는 세계여행]터키는 마피아의 나라

입력 2009-04-09 11:32:32

터키 남자들의 영원한 로망 '마피아'

터키는 마피아의 나라이다. 나는 태어나서 '마피아'란 사람들을 터키에서 처음 만났고, 평생 여행을 해도 다 만나지 못할 만큼 많은 마피아를 터키에서 다 만났다. 그러니 터키는 내게 마피아의 나라다.

나의 터키인 친구, 올해 고교 3학년인 아이쉐귤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 어떤 애냐고 물었더니 첫 대답이 이거다. "그 애 아빠가 마피아야."

마피아인 아빠 덕분에, 그녀의 남자 친구는 학생 신분으로 동네 PC방 사장이 되었단다. 터키 남서부의 대도시, 데니즐리의 동네 PC방은 꼭 나의 학창시절 학교 후문 근처 후미진 골목길의 오락실이나 만화방 같다. 어슬프게 불량스러운(그래서 귀여운?), 동네 건달들이 거기에 다 모여 있다. 녀석들마다 하나씩 꼬나문 담배 연기 때문에 눈이 따가울 만큼 뿌연 실내엔 깜빡이는 컴퓨터 모니터들만 보였다. 그래서 여학생들은 거의 출입하지 않는다.

나는 마피아의 아들이라는 녀석이 너무 궁금해서 아이쉐귤을 따라 그 PC방에 놀러갔다. 문을 여니 저 끝에 마피아 영화에서 수도 없이 본 바로 그 장면, 회전의자에 어깨 각도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담배를 꼬나문 자세로 마피아의 아들이 앉아있었다. 컴퓨터 모니터에 고개를 박고 일렬로 열지어 앉아있는 손님들이 마치 보스 앞에 일렬로 고개 숙이고 '형님~'을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남자 친구는 학교 올 때 책가방도 안 갖고 와. 그런데 선생님들도 그 애를 무서워해서 아무 말 못해. 멋지지 않아?"

아이쉐귤의 말이다. 이거 정말 너무 영화 같은 얘기 아닌가.

터키의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마피아 드라마'라는 장르가 있다. 실은 장르가 있다기보다는, 터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 주인공과 제목만 바뀔 뿐 늘 비슷한 캐릭터와 비슷한 이야기 구조의 '마피아 드라마'가 일년 내내 방송된다. 터키 남자들이 브라질과 이탈리아 남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축구광이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런 터키 남자들이 이 마피아 영화를 축구만큼 (때로는 축구보다 더) 열광한다. 인기 마피아 드라마가 방영될 때는 10대 꼬마들부터 30, 40대 건장한 남자들, 할아버지들까지 목욕탕에서 아줌마들이 모여 수다떨듯 삼삼오오 TV 앞에 모여서 주인공이 우여곡절을 겪을 때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한숨을 내쉬고 감탄사를 내지르며, 함께 드라마를 본다. '마피아'는 터키 남자들의 로망이다.

그래서일까. 터키에는 스스로를 '마피아'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버스회사에서 표 파는 남자들, 오토카르(터키의 버스터미널)의 호객꾼들, 심지어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웨이터들까지 '나, 마피아야'라고 말한다. 처음엔 농담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진짜 마피아였다. 그들의 사장님이 다 터키의 지하경제를 움직이는 검은 손이자, 크고 작은 조직을 거느린 '마피아'이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마피아이면 그 회사 직원들은 저절로 마피아의 부하들이 되는 것 아닌가.

지하경제의 검은 돈은 터키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큰 골칫거리라고 한다. 터키에서 큰 돈을 만지는 사업은 대게 다 마피아들이 쥐고 있다. 특히 버스회사'여행사'호텔'레스토랑 등은 거의 대부분이 마피아들의 독점시장이라고 한다. 그런 경제구조적인 문제 때문인지, 터키 남자들이 열광하는 마피아 영화들 때문인지, 터키에서 '마피아'는 부와 명예의 상징인 것 같다. 성공을 위해, 터키 남자들은 마피아가 되려 한다.

아무튼 녀석의 아빠는 시커멓고 번쩍거리며 미끈한 '마피아 표' 세단을 타고 다니며, 영화처럼 부하들이 도열해서 '형님! 다녀오십시오!'를 외치는 진짜 마피아라고 한다. 내 친구 아이쉐귤은 눈에 띄는 예쁜 외모에 뛰어난 학업성적으로 터키의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다 가고 싶어한다는 투어리즘고등학교에 다니는 '퀸카'이다. 그 동네 최고의 미녀 퀸카와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마피아의 아들이 사귀다니 그야말로 환상의 짝꿍인 셈이다.

두 사람은 마피아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멋있게 폼을 잡고 만날까? 웬걸, 겨우 열 일곱, 열 여덟의 소년 소녀는 수줍어서 서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서로 등지고 각자 컴퓨터 게임을 하더니, "갈게!" "응, 가!"란 한마디씩을 나누고 헤어졌다. TV드라마 같은 나라 터키에서도 드라마와 현실은 다른 법이다.

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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