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의 숨은 '동물적 야수성'

입력 2009-04-09 06:00:00

맨드라미는 영어로 'cockscomb'이며 한자로 '계관화'(鷄冠花 ), 즉 닭벼슬꽃이다. '맨드라미'라고 발음할 때 입가에 맴도는 부드러운 음율과도 어울리지 않고, '열정'이라는 꽃말과도 그다지 격이 맞지 않아 보인다. 사실 맨드라미는 '닭벼슬꽃'이라는 이름처럼 그리 예쁘지도 않다.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해서 흔히 볼 수 있을 따름이다. 화가 김지원(49)은 이런 맨드라미에서 '야수성'을 발견했다.

지난 2004년 봄 경기도 한 작업실 뒷마당에 맨드라미를 심은 뒤 자라는 모습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았다. 꽃을 보면서 작가가 느낀 동물적 격렬함이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졌다. 갓 봉오리를 피운 맨드라미는 강렬한 붉은 기운을 품고 주위의 초록색과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얌전하던 꽃은 점차 만개하면서 광란적 이미지로 바뀐다. 주위에는 나이프와 손으로 긁어댄 흔적들이 사방으로 퍼져가고, 꽃씨를 흩뿌려대는 맨드라미는 흡사 망나니의 칼춤을 닮았다. 색채 대비는 차분해졌지만 터치감은 사나운 듯 거칠어져 캔버스를 찢어낼 듯 하다. 아울러 맨드라미 꽃무리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햇살 좋은 곳에 피어나 마음껏 꽃씨를 퍼트린 종자가 있는가하면 생명을 얻었지만 제대로 된 용틀임 한 번 못해보고 사그라드는 종자도 있다. 김지원의 그림은 반드시 실제로 봐야 한다. 사진으로 보는 작은 그림은 그저 울긋불긋한 맨드라미 뿐이지만 높이 2m가 넘는 대형 작품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으면 그 속에 빠져드는 충동이 견디기 힘들 정도. 갤러리분도의 윤규홍 디렉터는 "때때로 열정적이며, 무심하고 표독하며, 농염하고 순수하기도 한 맨드라미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며 작가의 자화상"이라고 했다. 전시회를 앞두고 현재 선주문도 잇따르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조형미술학교를 졸업한 김지원은 이번 전시회에서 맨드라미 시리즈 외에 수채로 그린 드로잉 작품도 선보인다. 헬리콥터에 매달린 사람, 도자기를 타고 오르는 사람, 섬에 드러누운 사람 등 뜬금없는 우스꽝스러움을 선사한다. 그의 작품은 서울 삼성리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갤러리분도 전시회는 13일부터 5월16일까지. 053)426-5615.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