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 대피 뜬눈으로 밤새 발동동…공포에 떤 인근 주민들

입력 2009-04-07 10:02:51

◆칠곡과 대구 읍내동·관음동

"밤새 공포에 떨었어요."

6일 오전 11시쯤 경북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 백운산에서 시작된 불이 대구 북구 읍내동과 관음동 지역으로 번지면서 주민 수백명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특히 칠곡과 대구의 경계지역인 동명면 봉암리와 대구 북구 읍내동 아씨골 일대에는 불이 민가 100여m 앞까지 접근하면서 일대 주민 300여명이 가재도구 등을 서둘러 챙겨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혹시라도 불이 민가 쪽으로 번질까 수돗물을 틀어 지붕에 계속 물을 뿌리는 등 밤새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아씨골에서는 산속에 있던 '기도원'이 불에 탔지만 인근 골짜기 곳곳에 흩어진 6채의 가옥은 소방대원들이 밤새 안간힘을 쓴 덕분에 겨우 화마를 피했다.

한전 측은 관음변전소 인근까지 번지는 바람에 한때 전력 차단까지 검토했으나 결국 전력을 다른 변전소로 돌려 전기공급을 계속했다. 밤 11시를 넘어서면서 산불이 중앙고속도로 읍내터널 500여m 지점까지 근접하자 한국도로공사 대구경북본부는 만약에 있을 사태에 대비해 고속도로를 통제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달성군 옥포면

"18년 전 악몽이 떠오르네요."

6일 오후 4시쯤 대구 달성군 옥포면 김흥리 노인회장 김수돌(75)씨의 문중 재실 뒤에는 아직 꺼지다만 불꽃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고 있었다. "1991년에도 산불이 나서 이틀 동안 한숨도 못 자고 불을 껐는데, 이번 불은 그때보다 더 심한 것 같아.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큰불은 처음이야."

불길이 인가 옆까지 번졌던 이 마을 주민들은 2시간 동안 공포감에 떨며 발만 동동 굴렀다고 했다. 바람의 잔등을 타고 넘은 화마는 순식간에 수풀을 잡아먹었다. 주민들은 "불길이 얼마나 빠른지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며 아우성을 쳤다. 바람의 방향이 조금만 바뀌었어도 마을 전체가 화마에 휩싸일뻔한 상황도 있었다. "갑자기 누런 연기가 마을을 뒤덮는데 목이 막혀서 말도 제대로 못했어요. 어찌나 겁이 나던지." 박계순(76·여)씨가 당시 상황이 생생한 듯 몸을 떨며 말했다.

오후 2시 30분쯤 마을 주민 50여 명에게 대피령이 내렸지만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불은 무섭지만 집이 타들어갈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달아날 수는 없었다고 했다. 김영득(62·여) 이장은 "예전같으면 물동이라도 들고 불을 끌텐데 지금은 워낙 수풀이 우거져 잘못 말려들어 갔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며 "그래도 잔불이 다시 번지면 막아야한다는 생각에 밤새 뜬눈으로 지샜다"고 했다.

불길이 능선을 넘어 논공읍 달성산업단지쪽으로 번지면서 공단 입주 업체들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인접한 D자동차부품업체 직원들은 삼삼오오 몰려나와 손에 땀을 지면서 산불의 진행 상황을 지켜봤다. 업체 직원 김기철(36)씨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밤에는 공장 옆 숙소에서 머물기 때문에 밤새 불이 새로 나면 큰일"이라며 불안해했다.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폐결핵환자수용시설인 대구요양원도 입원 환자 38명 전원을 논공병원과 인근 복지관 등으로 분산 대피시켰다. 요양원 최종수 사무국장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대피시키고 중요한 서류들만 챙겨 부랴부랴 나왔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환자들 모두 다른 병원으로 옮겨 밤을 지샜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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